1996년 1월에 들려온 김광석의 사망 소식은 음악 팬들에게 허망함을 안겼다. 브라운관을 활발히 누비는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가슴을 울리는 노래를 불러 왔기에 상실감을 느끼는 이가 많았다. 더욱이 소극장 공연 1000회를 기록할 만큼 정열적으로 활동해 온 터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거짓말처럼 들렸다. 김광석은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에 총 여섯 장의 음반을 남기고 영원히 세상을 등졌다.
김광석은 떠났으나 그의 음악은 여전히 대중 곁에 머문다. 이은미(서른 즈음에), 김경호(사랑했지만), 나얼(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제이래빗(바람이 불어오는 곳), 나훈아(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많은 가수들이 김광석의 노래를 끊임없이 리메이크한다. 또한 경연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대중음악계와 방송을 벗어난 곳에서도 김광석의 인기는 높다. 2012년 초연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비롯해 ‘그날들’,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 ‘그 여름, 동물원’ 등 그의 노래를 재료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이 자그마치 네 편이나 제작됐다. 2015년 SK텔레콤은 ‘연결의 신곡 발표’라는 타이틀로 일반인에게 받은 가사를 입혀 김광석의 미발표 곡을 정식으로 출시하는 프로젝트를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김광석의 노래는 사후에도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김광석의 음악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통기타가 주로 앞에 나서는 단출한 구성을 보인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편안함 때문일 것이다. 그의 곡들은 편성이 정갈하고 멜로디도 수더분하다. 과한 치장이 없어 안온감이 느껴진다.
가사는 다수의 공감을 샀다. ‘이등병의 편지’는 입대를 앞둔 장정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으며, ‘서른 즈음에’는 서른 살을 바라보는 청년들이 다가올 날을 희망적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해 줬다. 많은 이가 어떤 일에 실패해 기운이 빠져 있을 때에는 ‘일어나’를, 원하던 사랑이 이뤄지지 않아 슬픈 순간에는 ‘사랑했지만’을 찾을 정도로 그의 노래는 우리 인생에 밀착해 있다. 이러한 보편성 덕분에 김광석은 꾸준히 대중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목소리와 가창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김광석은 한동준(사랑했지만), 류근(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 동료 가수나 시인으로부터 노랫말을 받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지은 가사가 아니더라도 그가 부르기만 하면 신기하게도 본인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시원하게 뻗어 나가면서도 왠지 애처롭게 들리는 보컬은 화자의 처지를 극대화했다. 노래가 띤 사실감에 듣는 이들은 쉽게 감정을 이입했다.
올해로 김광석 25주기를 맞는다. 그가 떠나고 긴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노래들은 남녀노소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며 재생산된다. 엊그제 음원차트 상위권에 든 노래도 며칠 지나지 않아 금방 잊히는 요즘 상황을 보면 김광석의 존재는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의 음악에 깃든 삶과 진솔함이 오늘도 강력한 힘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