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중국이 싫다는 젊은이들

입력 2021-01-04 04:02 수정 2021-01-04 17:16

PC 게임 온라인 구매 플랫폼인 스팀에 가입한 후 한동안 경고 이메일에 시달렸다. 중국 본토 거주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내 스팀 계정에 무단 로그인을 시도한 정황이 있어 차단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나 ‘해당 사용자는 당신의 계정 이름과 암호를 정확하게 입력했다’는 영어 문구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가 로그인에 성공한 뒤 거액을 결제하거나 불법 해킹을 저지르기라도 하면 오롯이 덤터기를 쓸지 모를 일이었다.

덜컥 겁이 나서 비밀번호를 바꾸기로 했다. 호시탐탐 해킹 시도가 벌어지는 플랫폼답게 비밀번호 변경 절차도 번거로웠다. 로봇 접속을 차단하겠다며 사진을 늘어놓고 “신호등을 찾아라” “버스를 찾아라” 묻는 리캡챠(reCAPTCHA)에 시달린 끝에 비밀번호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쉽게 뚫리지 말라고 알파벳과 숫자, 특수문자를 복잡하게 섞었다. 내 지능으론 도저히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따로 쪽지에 옮겨 적어 모니터 아래 붙였다.

하지만 웬걸, 비밀번호를 바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경고장이 날아왔다. 이번엔 아예 한술 더 떠서 영어가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 쓰는 간체 중국어로 왔다. ‘당신의 계정 이름과 암호를 정확하게 입력했다’는 문구 역시 언어만 영어에서 중국어로 바뀌었을 뿐 그대로였다. 첫 중국어 경고 이메일을 받았을 때는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려 했다. 그로부터 약 12시간 만에 두 번째 중국어 이메일을 받으니 그냥 넘어가선 안 되겠다 싶었다.

고민 끝에 진짜 중국 본토 거주자라면 기겁할 내용을 스팀 계정 정보에 넣기로 했다. 자기소개 입력란은 ‘프리 티벳’ ‘프리 홍콩’ ‘타이완 넘버 원’ 같은 반중(反中) 정치 구호로 도배했다. 무단 침입자가 영어를 모를 가능성에도 대비해 ‘톈안먼’ ‘파룬궁’ ‘류샤오보’ 등 문구를 간체 중국어로 넣었다. 이조차 부족할까 싶어 시진핑 국가주석과 닮았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금기시되는 ‘곰돌이 푸’를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했다.

물론 이 기상천외한 발상을 나 스스로 내놓은 것은 아니다. 유튜브에서 유사한 사연을 접하고 따라해본 것일 뿐이다. 처음에는 과연 효과가 있을지 반신반의했지만 해보니 거짓말같이 이메일 경고장이 뚝 끊겼다. 혹시나 중국 해커가 앙심을 품고 해코지할까 걱정했지만 1년 반이 넘도록 그런 일은 없었다. 온라인에서는 이 수법을 가리켜 중국인 비하 표현인 ‘짱깨’와 해킹 방지 프로그램을 뜻하는 ‘가드’를 합쳐 ‘짱깨 가드’라고들 부른다고 한다.

내가 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던 2000년대만 해도 중국은 ‘기회의 땅’으로 통했다. ‘미래는 중국에 있다’거나 ‘성공하려면 중국어를 해야 한다’는 낙관적 구호는 당시 기업인과 명사들의 상투어였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분위기는 정반대가 된 것 같다. 공무원이든 대기업 직원이든 간에 중국 근무는 되도록이면 피하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들었다. 삼성전자는 아예 중국 내 생산 공장을 폐쇄하며 ‘탈(脫)중국’ 노선을 공식화했다.

이런 정치적, 경제적 흐름과 별개로 사회 경험이 없거나 부족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맹렬한 반중 정서가 퍼지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중국발 해킹 위협, 오프라인에서는 미세먼지에 시달리니 중국이 좋을래야 좋을 수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전적으로 중국 탓이라는 주장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반중 정서는 피부에 와닿는 구체적 체험에 근거를 두고 있어 타민족 혐오나 인종주의 같은 ‘정치적 올바름’ 프레임으로 접근하기도 껄끄럽다.

젊은이들의 반중 정서를 그대로 놔둔다면 한·중 관계의 미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아마도 우리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0년 만에 반중 정서가 가장 강한 인구 집단의 등장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런 추세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방법도 마땅히 보이지가 않는다. 무엇보다 중국 스스로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지만 과연 그들에게 그런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조성은 온라인뉴스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