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 방지 조치인 ‘예방적 살처분’에 반대하는 농장이 등장했다. AI 방역지침은 확진 농장 반경 3㎞ 이내 모든 가금류 농장을 예방적 살처분 대상으로 규정한다. 반대하는 곳은 36년간 AI 발생 사례가 없었던 동물복지축산농장으로 당국의 조치가 ‘생명 경시’와 ‘토양 오염’을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방역 당국은 강제 행정처분을 들고 나온 가운데 동물보호 및 환경단체까지 논쟁에 가세할 방침이어서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파문의 중심에 선 곳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 위치한 ‘산안마을’이다. 현재 3만7000여 마리의 산란계를 사육 중인 이곳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인증하는 동물복지축산농장이다. 여느 동물복지축산농장과 다른 점이 있다. 이곳은 공동체주의를 표방한 ‘야마기시즘(Yamagishism)’을 실천하는 국내 유일 산란계 농장이다. 일본 농민 야마기시 미요조가 주창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 산란계를 우리에 가둬 놓고 생산성을 높이는 공장식 축산 방식 대신 산란계와 함께 생활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그런데 인근 산란계 농장에서 AI 확진 사례가 나오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23일 산안마을에서 1.8㎞ 떨어진 농장의 산란계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2014년과 2018년에도 인근 농장에서 확진 판정이 나온 적 있지만 예방적 살처분 범위 바깥이라 화를 면했다. 그런데 당시 반경 500m였던 예방적 살처분 범위가 3㎞까지 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산안마을 측은 이 조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동물단체나 환경단체도 반발하며 산안마을과 연대를 모색 중이다. 산안마을 관계자는 31일 “방역지침도 준수했고 860개나 되는 검체를 채취해 검사하고 있다. 건강하게 닭을 키워 36년간 AI 감염 사례가 없는데 인근에서 나왔다고 살처분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산안마을에 따르면 방역 당국은 지속적으로 살처분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날까지 자발적으로 살처분하지 않으면 연초에 강제 집행하겠다는 경고도 했다. 산안마을 관계자는 “살처분한 개체는 농장 부지에 파묻는다. 풀을 먹이는 특성상 파묻게 되면 향후 이곳에서 닭을 키우는 일이 힘들어진다. 동물복지 차원뿐 아니라 토양이 오염되는 점도 문제”라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방법이 없지는 않다. 3㎞ 이내라도 지자체 가축방역심의위원회를 거쳐 농식품부 승인을 받으면 예외가 인정되긴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농식품부와 화성시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화성시 관계자는 “다른 예방적 살처분 농장의 반발도 있고, 농식품부에서 당장 살처분하라고 해서 심의위를 열 겨를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화성시에서 심의위를 열고 예외 인정을 요구한 적이 없어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반박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