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다. 특검은 “대법원이 뇌물공여 범행이라고 명시적으로 인정한 사안”이라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이유로 이 부회장을 집행유예로 감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적극적이고 직권남용적인 요구에 의한 수동적 지원이었다”고 반박했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결코 없을테니 지켜봐달라”며 선처를 구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심리로 30일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서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 달라고 청탁하고 그 대가로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일부 횡령·뇌물액수를 추가 인정해 사건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날 특검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관계를 두고 “최고 경제권력자와 최고 정치권력자의 상호 윈윈”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강요당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이 부회장 측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권력자든 필부든 동일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특검은 삼성 준법감시위 활동을 두고 “재판부가 양형 반영 기준으로 요구한 ‘기업총수가 무서워할 정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준법감시위 활동을 유효하다고 보더라도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줘선 안 된다고 했다. 준법감시위 활동은 권고 형량범위를 정하는 특별 양형인자가 아닌 ‘진지한 반성’ 등의 일반 양형인자에 불과하다는 이유였다. 이 부회장의 권고형량 범위는 징역 5년에서 16년5개월인데 그보다 낮은 양형은 불가하다는 취지였다. 집행유예는 징역 3년 이하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부회장 측은 박 전 대통령에게 위법하거나 부당한 직무집행을 요청하거나 청탁한 적이 없고, 특혜를 받은 사실도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기업에 대한 요구는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 판시도 제시했다.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7월 이 부회장과 면담에서 “지난번 승마 관련 지원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질책한 일 등을 근거로 ‘수동적 뇌물공여’라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1년 가까운 수감생활과 4년 가까운 검찰 조사로 과거에 뭘 잘못했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최후진술을 했다. 그는 “두달 전 이건희 회장의 영결식이 있었다” “존경하는 아버지께 효도하고 싶다”며 울먹였다. 또 부친 이 회장의 추도사에 나온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하다)를 언급하면서 “제가 꿈꾸는 승어부는 더 큰 의미다. 외부에서 부당한 압력이 와도 거부할 수 있는 촘촘한 준법제도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8일 열린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