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의 고소 사실이 여성단체 대표와 여당 의원을 통해 박 전 시장에게 전달됐다는 검찰 수사 결과에 여성계 내부에서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피해자 지원 단체 측은 해당 인사 및 소속 단체를 사건 당시 배제했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는 3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성단체의 고소 관련 정보 유출이) 사실이라면 심각하게 비난받아야 하고, 해당 관계자는 사과와 함께 여성단체 관련 업무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정치인에게 피해자 관련 정보를 다 흘려주면 앞으로 어떤 피해자가 지원단체를 믿고 이야기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성폭력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가장 중점에 둬야 하는 여성단체가 오히려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집단으로 변질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 대표는 “법률적 도움이 필요하면 변호사를 연결하고, 치료가 시급하면 병원과 연결해주는 등의 조치와 동시에 신변을 철저히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피해자 보호인데 (해당 단체가) 본분을 망각한 듯하다”고 비판했다.
젊은이들로 구성된 2030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는 A씨는 인권변호사로서의 박 전 시장과 ‘공(功)’만 공유한 기성세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A씨는 “우리 세대는 박 전 시장의 공로를 크게 느끼지 못해 그의 잘못을 따로 분리해 바라보지만 기성세대는 우리만큼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기밀 유지는 단체를 막론하고 기본 중의 기본인데 여성단체에서 피해자 관련 중요 정보가 유출됐다는 얘길 들으니 착잡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여성단체의 최우선 의무는 피해자 보호임을 다시 한번 환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개인 친분이나 인맥에 상관없이 피해자 관련 비밀 유지가 가장 우선이라는 것을 모두가 주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지원센터에서도 피해자 관련 정보가 가해자 등에게 유출되지 않도록 분명하고 확실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주 여성정치연구소장도 “피해자 보호단체에서 피해자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절차와 접근 권한 관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리고 피해자 보호 측면을 등한시한 것은 아닌지 면밀히 점검하고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피해자 측을 지원하는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공동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고 “공동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은 피해 지원 요청에 대해 외부에 전달한 바가 없음을 명확히 밝힌다”고 밝혔다. 공동행동 측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시기에 서울시 (젠더)특보로부터 고소 여부 관련 메시지를 받았으나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응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 사실을 국회의원에게 유출한 단체는 피해자 지원단체 결성 시기부터 이미 전면 배제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검찰과 경찰이 박 전 시장 관련 사건 관계자 대부분을 불기소하고 사건을 마무리함에 따라 곧 발표를 앞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조사를 연내 마무리하려 했으나 위원회의 심의 의결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해 내년 1월 혹은 2월 중 발표가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강보현 김지애 기자 bobo@kmib.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