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첫길 들기

입력 2020-12-31 19:32 수정 2020-12-31 19:59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먼저 창을 열고 푸른 하늘빛으로
눈을 씻는다.
새 신발을 사면 교회나 사찰 가는 길에
첫 발자국을 찍는다.
새 호출기나 전화의 녹음은 웃음소리로 시작한다.
새 볼펜의 첫 낙서는 ‘사랑하는’이라는 글 다음에
자기 이름을 써본다.
새 안경을 처음 쓰고는 꽃과 오랫동안 눈맞춤을 한다.

정채봉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중

처음에는 소중한 것을 담고 싶다. 눈 뜨고 가장 먼저 푸른 하늘빛을 보고, 새 볼펜으로 스스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처음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일 것이다. 2021년 새해 첫날을 맞았다. 어제에 이어진 오늘이라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지만, 시작점의 무게 또한 무시하긴 힘들다. 2001년 1월 세상을 떠난 정채봉 시인의 20주기를 맞아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 개정증보판으로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