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사랑 덕분에…” 한걸음씩 성장하며 웃음꽃

입력 2020-12-31 03:01
김영민군이 지난 9월 서울 양천구의 한 재활병원에서 자세교정 의자에 앉은 채 활짝 웃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희소병’ ‘장애’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에게 코로나19는 더 가혹했다. 경제적 타격이 엎친 자리에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인한 치료 중단이 덮쳤다.

하지만 끝 모를 터널, 짙은 어둠 속에서도 선물 같은 기적은 찾아왔다. 그 곁에는 아낌없이 사랑을 나누고 기도해준 이들이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그림자가 가시지 않은 2020년 끝자락에서 ‘기적을 품은 아이들’(기품아)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생후 10년째 바닥에서 하늘만 바라보며 기도하던 김영민(가명·두개골조기유합증)군은 2020년을 맞으며 품었던 새해 소망을 이뤘다. 바로 ‘앉은 자세로 기도하는 것’이었다(국민일보 1월 31일자 35면).

어머니 노미영(가명·40)씨는 30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우리 가족에겐 기적 같은 한 해였다”고 했다. 이어 “전에는 치료사 선생님이 영민이를 벽에 기대어 앉혀 줘도 몇 초 지나지 않아 쓰러지곤 했는데 지금은 앉은 채로 5~10분은 거뜬하다”며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가 중단될 뻔했지만 ‘기품아’ 덕분에 계속 치료받을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도록 눈맞춤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던 영민이는 독자들이 보내준 성금으로 ‘스노젤렌’(다감각) 치료를 받으며 잃어버린 시각을 되찾아 가는 중이다. 노씨는 “영민이의 시선이 늘 한곳에 고정돼 있어 가슴이 아팠는데 요즘엔 뽀로로 장난감 불빛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이는 아들을 바라보는 게 낙”이라며 웃었다.

쌍둥이 형제 도예람·예랑군이 지난 10일 집에서 나란히 선 채 미소 짓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이른둥이로 태어나 뇌병변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쌍둥이 형제 도예람·예랑(가명·4)군에게 ‘기품아’는 기적의 단초가 돼줬다(2월 28일자 35면). 예랑이는 2개월 전 태어나서 처음 스스로 균형을 잡으며 세 걸음을 걸었다. 어머니 김미숙(가명·38)씨는 “숱한 어려움 가운데 발견한 올해 최고의 순간”이라며 “성경 속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킨 모습이 떠올랐다”고 전했다. 이어 “예람이도 혼자 서 있을 정도로 다리에 힘이 붙었는데 새해엔 쌍둥이가 손잡고 같이 걷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동네에서 쌍둥이를 알아보고 격려해주는 이들도 늘었다. 김씨는 “다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텐데 기사를 보고 응원해주시고 성금도 보내주시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예람이 예랑이도 이웃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하은양이 지난달 '기적을 품은 아이들' 성금으로 마련한 재활치료용 자전거를 타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뇌병변장애와 지적장애가 함께 있어 입이 굳게 닫혔던 박하은(가명·12)양은 부쩍 수다쟁이가 됐다(3월 27일자 35면). 어머니 박지영(가명·43)씨는 “치료사들도 ‘이게 무슨 일이냐’며 깜짝 놀란다”며 “그저 이름 부를 때 미소만 지어줘도 고마운 아이였는데 이제 ‘쪼아’(좋아요) ‘빠빠’(밥주세요) ‘뽀뽀’(뽀뽀해주세요)를 입에 달고 살 만큼 인지·언어 능력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한 달째 병원에 가지 못하던 시기에 ‘기품아’가 기적처럼 찾아왔다”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분들의 도움 덕분에 치료용 자전거를 구입하고 중단했던 언어치료도 받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은이에게 코로나19는 오히려 반가운 손님이 돼 줬다. 등교 일수가 줄면서 집 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져 동생들과 소통할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박씨는 “아이들끼리 매일 성경도 읽고 큐티도 하는데 2개월 전엔 하은이가 동생을 따라 태어나 처음으로 ‘아멘’이라고 말해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했다.

기적 같은 순간을 경험한 이들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코로나 여파로 살림은 더 팍팍해졌고 치료는 언제 다시 멈출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사랑을 흘려보내 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사랑이 필요한 이들을 향한 위로도 전했다.

“도움이 언제 어디서 올진 모르지만, 그 도움이 누구로부터 오는지에 대한 확신을 얻은 한 해였어요. 하나님은 각자의 필요를 잘 아시는 분이에요. 힘들어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박지영)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