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건 한순간이지만 구할 때는 안간힘을 써야 했습니다. 지난 5월부터 국민일보가 만난 25마리의 유기동물들 이야기입니다. 동물 구조는 포획→임시보호→사회화 및 건강관리→최종 입양 등 4단계로 이뤄지는데요. 지난해 기준 13만 마리가 넘는 유기동물을 감당하기에는 국가의 구호 역량이 한참 부족해 시민 참여가 절실합니다.
위기의 동물과 시민 봉사자를 잇는 징검돌 역할을 언론사가 하면 어떨까. 유기동물에게 가족을 맺어주는 기획 ‘개st하우스’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지난 8개월 동안 총 25마리가 출연해 22마리가 행복하게 입양 갔습니다. 2020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개st하우스’에 등장한 주인공들을 다시 만나볼까요.
매주 찾아오는 감사 카톡… “구해줘서 고맙다냥”
첫 사연의 주인공은 5마리의 새끼 고양이였어요. 생후 1개월 된 고양이들은 주민 학대를 피하느라 심각한 영양실조 및 대인 공포에 시달렸죠. 지난 5월 민규진(경남 창원·30대)씨의 구조 사연이 소개되고 생존한 네 마리는 부산 등지로 무사히 입양됐습니다.
규진씨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1주일에 한 번 ‘예쁜 아이들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감사 문자를 받는다”며 웃었습니다. 그는 새끼 고양이들에게 이유식을 먹이느라 2~3시간 쪽잠 자던 일을 떠올리며 “너무나 힘들었지만 뒤에 찾아온 뿌듯함이 넘치도록 크다. 독자 여러분도 위기의 동물을 만나면 손을 건네 달라”고 전합니다.
“10마리나 입양 갈 줄 정말 몰랐어요”
가장 많은 동물이 출연한 사연이죠. 지난 10월, 경기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유기견 출신 비글이 새끼를 11마리 낳았습니다. 제보자 김민지(가명·20대)씨는 “바글바글한 모습이 흐뭇하면서도 강아지들의 운명이 걱정된다”며 사연을 제보했죠. 추운 겨울이 오기 전 몇 마리나 입양 갈지 취재진도 크게 걱정했는데요. 다행히 11남매 중 10마리나 가족을 찾았습니다.
비글들은 사냥개 출신답게 하루 2시간 산책해도 지치지 않는 강철 체력을 보유했답니다. 야외활동이 부족하면 집안 가구와 이불을 모두 물어뜯어 ‘귀여운 악마견’으로 불리죠. 입양 가정들은 새끼 비글과 놀아주느라 부모·자녀 교대로 매일 산책을 다닌다고 합니다.
11남매 중 가장 건강한 연두는 아직 입양을 기다립니다. 3시간 산책해도 지치지 않는 연두를 중도 포기한 임시보호 가정이 세 곳인데요. 그런 연두를 민지씨가 다시 품었어요. 민지씨는 출근하기 전인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연두와 새벽 산책을 한답니다. 제보자는 “연두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아이를 더 행복하게 해줄 가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요. 비글 연두의 일상을 응원하고 싶다면 인스타그램(beagle_lime)을 방문해주세요.
“안락사 D-1 구조된 짜장이, 이렇게 잘 컸어요”
검은 주둥이가 정겨운 시고르자브종(시골 잡종의 인터넷 별칭) 짜장이는 100만 조회수를 기록한 ‘개st하우스’의 스타 견공이에요. 짜장이는 지난 8월 전남 광양의 보호소에서 안락사를 단 하루 남기고 구조됐는데요. 20명 넘는 독자들이 임시보호, 입양 신청을 해줘서 생명을 구했답니다. 최종 입양 날, 짜장이의 임시보호자가 “날 잊을 만큼 행복하라”며 눈물을 펑펑 흘리던 모습은 많은 감동을 전했죠.
짜장이는 100평 마당이 있는 경기도 김포의 박인수씨 집에서 살고 있어요. 인수씨는 “직접 만든 고구마, 소뼈 간식을 줬더니 두 달 동안 몸무게가 2배 됐다”면서 “처음에는 남자를 무서워하더니 이제 내 품에 안긴다”고 소개하네요. 학교폭력 예방극단을 운영하는 인수씨는 코로나로 수입이 전년의 5분의 1에 그치지만 “짜장이의 재롱 덕분에 힘든 시절을 견디고 있다”며 고마워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구한 고양이, 기옥이
“안녕하세요. 출근길에 눈앞에서 길고양이 교통사고를 목격했어요. 사고로 뒷다리가 부러졌는데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치료비가 200만원이나 드는데, 회원님들 도와주세요.”
지난 7월, 로드킬 위기의 고양이에게 두 번의 기적이 찾아옵니다. 마음 착한 직장인이 병원으로 옮겨주고, 인터넷 커뮤니티 MLB파크 회원들이 한푼 두푼 치료비를 모아줬거든요. 지난 21일 기옥이는 처음부터 꾸준히 후원한 대구의 김지연(가명)씨에게 입양 갔어요. 지연씨는 “바쁜 출근길에 교통사고 당한 고양이를 구해줘서 고맙다. 기옥이의 이후는 내가 함께하겠다”고 하네요. 기옥이는 집고양이 4마리와 잘 어울리고 있어요. 도착한 날부터 함께 웅크려 잠자고, 입양자가 건네는 간식도 맛있게 핥아 먹고 있답니다.
“가족을 기다려요” 리트리버, 사랑이
지난 10월, 서울의 한 전원주택에서 뼈만 앙상한 리트리버가 구조됐어요. 모 택배회사가 1개월 전 이사하면서 버리고 간 개였죠. 택배사 측은 “급하게 이사하느라 못 챙겼다. 개를 시 보호소에 보내라”는 답변을 했죠. 하지만 구조자 김연태씨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애교 많고 건강한 녀석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2개월째 돌보는 중이죠. 당시 19㎏에 불과했던 사랑이는 연태씨와 지역주민들의 돌봄으로 22㎏이 됐답니다.
취재진은 2시간 이상 동행 산책을 하며 사랑이를 자세히 관찰했는데요. 믹스견 사랑이는 리트리버답게 다른 견공과 친화력이 뛰어나며, 사냥개 포인터의 피가 섞여 활발한 성격을 지녔답니다. 발랄한 리트리버, 사랑이가 궁금한 분들은 구조자 연태씨의 이메일(ianstream@gmail.com)로 연락주세요.
[개st하우스]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현장에서 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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