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코로나 태풍’에 휩쓸린 스포츠
코로나19는 올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스포츠도 예외 없이 ‘코로나 태풍’에 휩쓸렸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이 선언된 지난 3월 각국 프로 리그·투어와 컵대회는 일제히 중단됐다. 한국에서 배구·농구의 조기 종료와 야구·축구의 개막일 연기는 유례없는 일이다. 관중석은 7월에야 개방됐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3월 24일 전화 회담으로 확정한 올림픽 연기는 코로나19에 대한 인류의 공포를 상징한 사건이 됐다. 전쟁으로 올림픽을 취소한 적은 있어도 연기한 전례는 없다.
② ‘최숙현 비극’ 부른 체육계 폭력
철인3종 선수였던 고(故) 최숙현이 수년간 폭력에 시달리다 지난 6월 세상을 떠났다. 최숙현과 가족은 마지막 순간까지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 국가인권위원회, 시청, 검찰, 경찰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 체육계 폭력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주요 가해자였던 선배 선수 장윤정과 김도환, 지도자였던 김규봉 전 경주시청 철인3종팀 감독, 운동처방사 안주현씨가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대한철인3종협회는 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됐고, 기존 임원진은 해임됐다. 국회는 선수를 폭행한 지도자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최숙현법’을 법제화했다.
③ 올해도 ‘손세이셔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는 손흥민은 한 해 동안 세계에서 가장 멋진 골을 넣은 선수에게 주는 푸스카스 상을 받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 17일 ‘2020 더베스트 FIFA 풋볼 어워즈’에서 손흥민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지난해 12월 7일 프리미어리그 16라운드 번리전에서 70m를 드리블 질주해 넣은 골이다. 손흥민의 골러시는 올 시즌에도 이어져 리그 11득점으로 이 부문 공동 2위에 있다. 토트넘 소속으로 100번째 득점까지 1골 앞으로 다가갔다.
④ ‘공룡 군단’의 첫 포효
NC 다이노스는 2011년 창단 후 처음으로 올해 프로야구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NC의 빠른 성장은 모기업 NC소프트 대표이사인 김택진 구단주의 야구사랑, ‘데이터 야구’에 현장감을 입힌 이동욱 감독의 지도력, 영입 자원과 창단 멤버의 조화로 이룬 결실이다. 주장 양의지는 한국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을 확정한 지난달 24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모기업 인기게임 리니지의 최강 아이템 ‘집행검’을 들고 신흥 왕조의 탄생을 예고했다.
⑤ 김연경 복귀와 심판 징계 파문
김연경은 11년 만에 프로배구 흥국생명으로 복귀한 뒤 ‘네트 논란’으로 홍역을 앓았다. 경기 중 네트를 잡아당긴 김연경에 대해 강주희 심판이 심판 재량으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한국배구연맹(KOVO)은 강 심판에 제재금을 부과했다. 구단 항의 공문을 받은 KOVO 회의에선 이례적으로 총재 특보가 김연경 상벌위원회 회부 의견을 냈고, 김영일 전 경기운영본부장은 제재금에 반발한 강 심판을 따로 만나 재계약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발언으로 논란을 키웠다. 김 전 본부장이 사임하면서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으로 활약했던 김건태씨가 신임 본부장으로 선임됐다.
⑥ ‘전북 왕조’ K리그 4연패
K리그에서 전북 현대의 강세는 ‘코로나 시즌’에도 거침없이 몰아쳤다. 전북은 올해 리그 사상 최초로 4회 연속 우승의 대업을 달성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현대가(家)’ 맞수 울산 현대와 막판까지 경합했던 전북은 최종전을 한 경기 앞두고 치른 울산과의 맞대결에서 1대 0으로 승리해 K리그1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전북은 이어진 대한축구협회(FA)컵 결승에서 울산을 또 다시 쓰러뜨리며 구단 사상 최초 ‘더블(2관왕)’을 달성했다.
⑦ 울산, 무패로 거머쥔 대륙 패권
울산은 국내에서 전북에 밀려 ‘2인자’의 설움을 겪었지만, 아시아 무대에서는 경쟁자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2020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를 정복해 K리그의 명예를 드높였다. 지난 19일 카타르 알자누브 스타디움에서 이란 페르세폴리스에 2대 1로 역전승해 우승을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단 1패도 당하지 않았다. 2012년에 이어 8년 만의 ‘무패 우승’이다. 이로써 K리그는 대회 통산 우승 횟수를 6회(대회 전신 포함 12회)로 늘리며 최다 우승 리그의 지위를 유지했다.
⑧ 월드시리즈 새 역사 쓴 최지만
박찬호부터 류현진·김광현까지 그동안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승승장구한 ‘코리안 리거’는 대부분 투수였다. 성공한 야수로 추신수가 있지만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지는 못했다. 올해 탬파베이 레이스 중심타자로 활약한 최지만은 월드시리즈에서 안타와 득점을 기록한 최초의 한국인이 됐다. 최지만의 시리즈 최종 성적은 9타수 1안타 3볼넷 3득점. 탬파베이의 사상 첫 우승은 좌절됐지만, 최지만은 특유의 ‘다리찢기’ 수비와 집요한 출루로 주가를 높였다.
⑨ 돌아온 김효주, 자존심 지킨 최혜진
김효주는 2020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상 시상식 5관왕을 휩쓸었다.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과 KB금융 스타챔피언십을 정복하고 누적 상금 7억9713만원으로 이 부문 랭킹 1위에 올랐다. 평균 타수·다승·팬들이 뽑은 인기상·기자들이 선정한 ‘베스트 플레이어’도 김효주의 차지였다. 올해 14차례나 톱10에 오르고 시즌 최종전인 SK텔레콤·ADT캡스 챔피언십에서 가까스로 1승을 수확한 최혜진은 데뷔 시즌부터 3년 연속으로 KLPGA 대상을 수상했다.
⑩ 대거 퇴장한 21세기 베테랑들
2000년대 초 한국 프로스포츠 중흥기를 이끌었던 각 종목의 상징적 선수들이 은퇴했다. 프로축구 전북 현대의 이동국과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박용택, 한화 이글스의 김태균,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가드 양동근이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들 중 일부는 현역의 마지막인 올해까지 팀의 중추로 활약했다. 이들의 퇴장으로 한국 프로스포츠는 차세대 스타를 길러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