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정의도 못 내리는 국회… 정의당 “정부안은 개악”

입력 2020-12-30 00:08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 위원장인 백혜련(오른쪽) 민주당 의원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법안심사소위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왼쪽부터)와 대화하고 있다. 이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19일째 단식 중이다. 국회사진기자단

국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지만 ‘중대재해’의 정의도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안을 토대로 법안을 마련해 임시국회 내 처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정의당은 원안보다 후퇴한 ‘개악’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9일 중대재해법 심사를 위한 법안소위를 열었다. 당초 단일안을 가져와야 한다며 보이콧을 선언했던 국민의힘은 이날 소위에 참석했다. 법사위 소속이 한 명도 없는 정의당은 회의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정부안도 단일안이 아니라고 하니 다시 처음부터 논의한다고 하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국민의힘 간사인 김도읍 의원도 “애초에 단일안을 가져오라 주장했던 것도 이런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이라며 “‘중대재해’ 정의 규정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도 단일안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며 “(부처 간)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고 정부 협의안은 맞다”고 설명했다. 여야는 이날 법안소위에서 중대산업재해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를 지칭하는 중대시민재해를 구분하는 선에서만 의견을 모았다. 민주당은 내년 1월 8일까지 임시국회 회기가 남은 만큼 시간을 갖고 최대한 조율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안이 도출되기는 했으나 부처 간 합의가 마무리되지 못한 데다 각 의원안의 내용도 달라 주요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힐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핵심 쟁점은 적용 대상이 되는 사업장의 범위와 유예기간이다. 원안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만 4년간 법 시행을 유예하기로 했다. 정부안은 여기에 50인~100인 미만 사업장에도 2년 유예기간을 주는 방안을 추가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의 85%가 일어나는데 4년을 유예하는 것도 모자라 50인~100인 미만 사업장도 2년을 유예하는 방안을 가져왔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니라 중대재해기업보호법”이라고 꼬집었다.

소위에 참석해 발언 기회를 얻은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포·시행 기간에 유예기간까지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느냐”며 개탄했다. 이씨는 “정부와 여당이 대통령 공약의 취지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무원 면책 범위도 논란거리다. 원안은 ‘결재권자인 공무원’을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정부안은 형법상 직무유기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공무원을 처벌하도록 규정을 강화했다. 또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묻는 경영책임자 범위에서 장관과 지방자지단체장을 제외했다.

관련 부처들은 정부안에 “해당 업무를 기피하거나 권한의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정부 기관장에 무분별한 형사책임이 부과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수정 의견을 달았다. 또 “기업 부담을 신설하는 법안이기 때문에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 외에 손해배상액 상한선, 인과추정 조항 등도 쟁점이다.

앞서 민주당은 중대재해법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러나 막상 테이블에 올린 정부안이 ‘누더기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어 중대재해법 제정 취지가 유명무실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