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5~17)
교회가 왜 연탄과 음식을 제공하냐고 묻자 야고보서의 ‘행함 없는 믿음’ 말씀이 답변으로 돌아왔다. 선교에 도움이 되든 안 되든, 헐벗고 굶주린 이웃과 함께한다는 신앙 고백이다. 우문현답이었다.
경기도 연천 전곡읍에서 연천연탄은행과 연천푸드뱅크를 운영하는 전곡중앙교회(백성국 목사)를 28일 찾아갔다. 한탄강 인근 겨울 안개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 차량에 비상등을 켜고 교회에 도착했다. 서울보다 평균 4~5도는 낮은 기온으로 안개는 정오 무렵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예배당 앞마당에 임시 건물 형태의 연탄은행 사무실과 푸드뱅크 냉동창고 및 담임목사 목양실이 있었다. 백성국(62) 전곡중앙교회 목사가 취재진을 맞이했다.
“아버님과 형님에 이어 목회자가 됐습니다. 민통선과 가까워 군부대가 많고 홀로 사는 노인과 저소득 차상위 계층이 많은 이곳에서 목회하며 추위와 배고픔이 생명과 직결돼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먹는 것과 추운 것을 해결해야 하는데 교회 사정은 넉넉지 못했습니다. 그때 연탄은행을 만났습니다. 2005년 연천연탄은행을 설립해 주변 500여 가구를 돕고, 그들에게 먹을 것도 전하다 보니 3년 뒤 연천푸드뱅크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젠 전담 직원과 차량을 갖추고 전문적인 나눔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도시가스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산간벽지의 가난한 노인들에게 연탄을 가구당 하루 3장, 한 달 100장, 겨울철 500장을 무료로 제공하는 일을 15년째 이어 온 것이다. 일부 지역의 재개발과 고령 노인의 사망 등으로 연탄 가구는 300여 가구로 줄었지만, 푸드뱅크 수혜자는 개인 1000여명, 기관 20여곳으로 늘었다.
전곡중앙교회는 백명희(57) 전도사를 전임으로 파견해 나눔 사역을 이끌고, 교회 재정의 일부도 후원으로 보탠다. 여기에 수시로 이어지는 성도들의 헌신과 외부 기관의 지원이 더해져 지속적인 나눔이 가능하다. 백 전도사는 “15년이 지나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에서 취약 계층을 새로 알게 되면 먼저 교회로 연락해온다”면서 “하나님 사랑은 교회에서 말씀으로 나누고, 이웃 사랑은 연탄은행과 푸드뱅크로 실천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수혜자들 가운데 교인은 얼마나 될까. 백 목사는 “성도 가운데 연탄 가구는 전혀 없고, 푸드뱅크 인원도 5명 미만”이라고 답했다. 나눔 사역이 곧바로 전도 활동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도 교회가 하는 사역임을 지역 주민들은 다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백 목사는 “복음은 말뿐만 아니라 삶으로 전파하는 것”이라며 “예수님도 삶으로 복음의 향기를 전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연천연탄은행은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과 함께하는 전국 31개 지역연탄은행 가운데 하나다. 연천연탄은행 대표인 백 목사는 연탄은행전국협의회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백 목사는 “한국전력이 올해 전국 연탄은행에 기부한 연탄 75만장 가운데 3만장을 연천으로도 보내줄 예정이어서 지원 물량 걱정을 한시름 덜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후원과 봉사가 여의치 않지만, 사려 깊은 이웃들의 정성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년대교구 성도들이 연천까지 찾아와 연탄 1만4000여장과 함께 생필품 30박스를 전달했다. 연천군청 공무원들도 자체 모금을 통해 연탄을 기부하고 방역 수칙에 맞춰 배달 봉사도 하기로 했다. 주변의 한 김치공장은 코로나19로 학교급식 납품 물량이 줄자 수억원대 김치를 연천푸드뱅크 후원으로 돌렸다. 덕분에 인근 지역 푸드뱅크들을 한데 불러 모아 김치 나눔을 할 수 있었다.
백 목사는 “창세기 28장 야곱의 사닥다리처럼 크든 작든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목회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천=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