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대표적인 북핵 전문가로 꼽히는 켄 가우스 미 해군연구소(CNA) 국장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후 제재 완화와 관련한 중대한 제안을 북한에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에 대해 북한 문제의 진전을 위해서 한·일 공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가우스 국장과 워싱턴에서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과 한·미 관계 등을 전망하는 인터뷰를 가졌다. 이메일 인터뷰도 병행했다. 가우스 국장은 20년 넘게 북한 문제에 천착해 왔으며, 북한 관련 세 권의 책을 집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세 차례나 직접 만났다. 바이든 행정부는 어떤 대북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는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접근 방식은 옳았으나 전략이 없었다고 나는 평가한다. 북·미 정상의 직접 담판을 통한 ‘톱다운’ 방식은 김 위원장이 뛰어들만 했던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톱다운 방식은 미국 내 비판을 개의치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비슷한 접근법을 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북·미 실무대화를 중시하면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보텀업’ 방식의 접근법을 추진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전을 거두기 위해서는 어느 쪽이 먼저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바이든 행정부가 먼저 중대한 제안을 제시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북 제제 완화다. 그 다음으로 북한 체제 보장에 대한 일부 약속을 꺼낼 수 있다. 미국은 북한에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에 나설 경우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선제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북한이 먼저 대화를 제안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미국이 우선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김 위원장은 미국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 한해 북·미 대화 복귀를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으로 전망하는가.
“북한은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정권 이양 과정을 지켜보며 기다릴 것이다. 만약 바이든 당선인이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을 경우 북한은 외교로 돌아올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먼저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선택할 경우 나는 바이든 임기 초반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어쩌면 핵 실험을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에 등을 돌린 채 중국에 계속 의존하면서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침묵을 유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만약 도발을 감행한다면 어떤 방식, 언제쯤이 될까. 또 바이든 행정부의 대응은.
“북한이 도발을 선택한다면,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로 시작해 미사일 시험의 사거리를 늘리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 도발의 최고조 국면에서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거나 핵 실험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도발을 선택한다면, 그 시기는 2021년 늦은 봄이나 초여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도발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제재 강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를 약화시키기 위해 공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남북 관계 진전을 추구하는 데 대해 바이든 행정부는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으로 보는가.
“바이든 행정부는 문재인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지원할 것이다. 그러나 국제적인 대북 제재는 별개의 문제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에 대북 제재에 계속 동참할 것을 압박할 것이다. 이것은 미국 내 정치 문제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도 북한 문제에 대해 강경파가 있다. 문재인정부가 국제적인 대북 제재 공조를 약화시키는 대북 정책을 펼칠 경우 한·미동맹에 긴장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에 비공식 안보회의체인 ‘쿼드 플러스’에 가입할 것을 요구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도 같은 요구를 할 것으로 보나.
“미·중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에서 미·중 갈등은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펼쳐질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무역 전쟁과 위협 등 일방적인 조치로 중국을 압박하는 대신 동맹국들과 힘을 모아 중국을 견제할 것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바이든 행정부도 쿼드 플러스에 한국이 가입하기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반(反)중국’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스탠스를 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국의 쿼드 플러스 가입 여부는 어려운 문제다.”
-북핵 문제 진전을 위해 한국이 취해야 할 최선의 접근 방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일 공조와 한·미·일 공조의 강화다. 한국 입장에서 일본과 대북 문제에 협력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힘을 합쳐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문제에 대해 독창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미·일 공조는 북한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강력한 수단이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더 큰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북한도 한국만의 힘으로 자신들이 바라는 것들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워싱턴=글·사진 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