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거대여당의 ‘지지층 정치’… 입만 바빴던 제1야당

입력 2020-12-29 04:02
지난 4월 15일 당시 이종걸 더불어시민당 선거대책위원장,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희종 더불어시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왼쪽부터)이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21대 총선 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뉴시스

지난 4·15 총선에서 우리는 민주화 이후 최대 단일 정당 탄생을 목격했다. 전체 의석의 60%인 180석은 여야 힘싸움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 울타리마저 뛰어넘는 예상 밖 결과였다.

지난 총선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등으로 이념 대결이 극단으로 치닫던 와중에 벌어졌다. 16년 만의 최고 투표율(66.2%)을 기록하며 기록적인 세 대결도 벌어졌다. 이 혈전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은 임대차보호 3법을 비롯한 민생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등 개혁입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키며 기세를 올렸다.

야당과의 협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9월 취임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과거 인연이 있었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고공 협치’를 타진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당내 극렬 지지층과의 이해관계 때문에 별다른 성과 없이 21대 국회 첫 정기국회를 마치게 됐다.

협치 실패는 사회적 갈등 증폭, 정책 실패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짊어지고 있다. 죽마고우끼리도 편이 갈렸다. 비판 여론도 아랑곳 않는 거대 여당의 독주는 문재인정부의 레임덕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기력한 제1야당은 그 어떤 청사진도 제시하지 못한 채 패배의 충격에서 8개월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민생·개혁 입법, 그러나…

민주당은 21대 국회 개원 이후 적극적으로 민생 입법에 나섰다. 그 첫 성과가 바로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한 임대차보호 3법이었다. 임대차 3법은 정기국회가 개원하기 전인 7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당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실력을 행사한 첫 사례다.

부동산 문제는 역대 진보 정권을 괴롭혀 온 최대 이슈였다. 보수 진영이 진보 정권의 무능을 공격할 때마다 좌표로 삼았던 지점이다. 180석이라는 무기를 손에 쥔 민주당이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민주당은 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주택임대차보호법 및 부동산거래신고법)가 전세난을 완화시키고 장기적인 주거 안정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7월 31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곧바로 시행됐다. 야당은 일부 지역 시범 도입 등 완화 장치를 주문했으나 묵살됐다.

그 결과는 모두가 목도하고 있는 사상 최악의 전세 대란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28일 “임대차 3법의 경우 내년 6월 전월세신고제까지 시행된 뒤 성과를 봐야 한다”면서도 “총선 대승에 걸맞은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다소 서두른 면이 없지는 않다. 야당의 지적도 합리적인 지점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1996년 참여연대의 입법청원운동으로 촉발된 공수처도 마침내 24년 만에 설립 초읽기에 들어갔다. 공수처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1공약인 검찰 개혁의 상징적인 기구다. 김대중·노무현정부는 물론 보수 정권에서도 검찰 개혁을 위한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 내부 비리마저 기소 여부를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등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던 검찰의 권한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공수처법에 야권의 비토권을 포함시켰다. 야당 추천위원들이 공수처장 후보를 반대할 경우 임명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공수처장 후보 인선이 지연되며 설립이 올해를 넘길 것으로 예상되자 여당은 1년 만에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다시 통과시켰다.

거대 의석이 정치적 타협 대신 실력 행사의 무기로만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실제 21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이 야당과 협상의 묘를 살린 대목은 손에 꼽을 정도다. 코로나19라는 국가적 비상 상황에 따른 추가경정예산 편성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쟁점 법안이 민주당 단독 처리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러한 민주당의 외눈박이 행보는 조국 전 장관 사태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태 등을 거치며 문재인정부의 레임덕 위기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회 권력을 틀어쥐었음에도 국민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지지층만을 위한 정치 행보를 지속하면서 중도·보수층의 환멸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추미애와 변창흠의 대량 실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라는 책을 가방에서 꺼내고 있다. 추 장관은 페이스북에 “책을 읽고 중간중간 숨이 턱턱 막혔다”고 감상평을 썼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과 부동산 시장 안정의 구원투수로 각각 내세운 추미애 장관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사면초가 위기에 몰려 있다.

추 장관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 이후 검찰 개혁을 완수할 선봉장으로 나섰지만 특유의 공격적인 스타일과 거친 언행으로 야당과 사사건건 부딪혔다. 특히 추 장관 아들의 군복무 시절 휴가 특혜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면서 현 정부의 ‘검찰 개혁’이 내 편에만 유리한 것 아니냐는 야당의 비판을 불러왔다. 추 장관이 국회 상임위 회의에서도 “소설 쓰시네” 같은 공격적인 언사로 맞대응하면서 야당과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서울동부지검은 부랴부랴 수사에 속도를 냈다. 하지만 추 장관이 자신의 보좌관에게 아들 상급부대 장교 연락처를 직접 전달해 휴가 연장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추 장관과 아들, 보좌관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아들의 휴가 특혜 의혹을 털어낸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정조준하며 검찰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잇따른 무리수에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0%대로 주저앉은 상태다.

‘24전 24패’의 수렁에 빠진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구원투수로 투입된 변 후보자는 막말 논란으로 출발부터 삐걱댔다. 변 후보자는 2016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 시절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에 대해 “걔만 신경썼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렸고, 임대주택 입주자를 향해서는 “못사는 사람들”이라고 비하했다. 고위 공직 후보자로서 인성을 의심케 하는 발언이었다.

야당뿐 아니라 구의역 사고 피해자 김군의 동료들,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단체도 변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지만 여당 의원들은 변 후보자 감싸기에만 급급했다. 2016년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구의역 사고에 대해 “그게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위선”이라고 막말을 했을 때 파상공세를 펼쳤던 야당 시절과는 다른 모습에 ‘내로남불’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여론에만 호소한 야당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8월 19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추모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묵념하는 모습. 김 위원장은 “5·18 민주영령과 광주시민 앞에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21대 총선 이후 원 구성 협상부터 주요 입법 과정에서 거대 여당의 독주에 입으로 견제구만 던지는 데 그쳤다. 이른바 개혁입법을 다소 지연시키는 데 만족해야 했다. 총선 이후 의석수에 압도당한 국민의힘의 투쟁 전략은 “국민의 힘을 모아 달라”면서 여론전에 ‘올인’하는 것이었다. 당 관계자는 “여당이 야당을 무시하고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는 상황에선 민주당의 반민주적 행태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에선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대여 투쟁을 위해 일부 상임위원장직을 챙겨오는 협상을 해야 한다”는 현실론도 제기됐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입법 독주의 마지막 방파제로 여겼던 법제사법위원장을 차지하지 못하는 상황에 몰리면서 다른 선택지를 찾지 못했다. 당시 한 중진 의원은 “민주당이 먹다가 토해낸 것(법사위원장 외 일부 상임위원장 자리)을 다시 받아먹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공수처법 개정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도 나섰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는 토론 종결 후 표결 강행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면서도 내놓은 고육지책의 여론전이었다. 당내에선 “강경 투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지만 역풍 우려 때문에 장외투쟁을 강행하지는 못했다. 코로나19 확산 국면뿐 아니라 태극기 세력과의 재결합이라는 여당의 공세가 예상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당명 개정과 일부 당협위원장 교체를 비롯한 당 쇄신에 안간힘을 쏟았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 데 이어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어의 몸이 된 데 대해서도 고개를 숙였다. 김 위원장은 “정당을 뿌리부터 다시 만드는 개조와 인적 쇄신을 통해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인물난까지 해소되지 못하면서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뿐 아니라 차기 대선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은 높아지고 있다.

강준구 김경택 백상진 기자 eyes@kmib.co.kr

[현장에서 본 2020]
▶①
▶②
▶③
▶⑤
▶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