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팬데믹 시대에 꾸는 지역 전환의 꿈

입력 2020-12-29 03:01

생소하기만 했던 단어 ‘팬데믹’이 2020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다. 한 해 동안 우리는 삶을 돌이켜 회개함과 동시에 더불어 살길을 모색 중이다. 그리스도인의 일상과 교회의 변화가 더디기는 하지만, 한국교회 안에도 기후위기 비상사태가 선언되고 탄소금식 캠페인과 지구돌봄서클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더 이상의 것은 필요 없다’고 거절하며 필요만큼 누리는 삶이 연습되는 것이다. 지금의 신학과 목회를 재정립하는 움직임도 있다. 그리스도인이 기후위기의 상황과 생태적 약자를 가슴에 품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머무르며 기도하고 저항함으로써, 신음하는 피조물 앞에 당당히 나서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특히 기대가 큰 건 지역에서 훈련되는 환경선교사다. 두려움이 아닌 희망을 품고 생명을 선택함으로써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이들이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에서 실천하라’고 했다. 지구적으로 사고해도 사고와 행동의 중심은 여전히 지역이어야 한다. 팬데믹과 기후위기의 위험성이 커질수록 파리기후협약 때 지방정부를 온실가스 감축의 주체로 인정하고 적극 참여를 요청했던 게 떠오른다.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은 온실가스 감축의 주체이므로 지방정부가 실질적 감축을 이뤄낼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 시행하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전 세계 절반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면서 에너지 관련 온실가스 배출의 70%를 차지하는 곳이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전국 80개 지자체(광역 17개, 기초 63개)가 ‘탄소중립 지방정부 실천연대’를 발족해 2050년까지의 탄소중립을 선언한 건 상당한 의미가 있다. 1인당 탄소 배출이 세계 4위인 우리나라에서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건 어려울 순 있지만, 더는 미룰 수도 미뤄서도 안 되는 선언이다. 모두가 함께 향해야만 하는 지향점이다. 단순히 선언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함께 상상하고 꿈꾸는 이들이 절실하다. 꿈꾸는 대로 이뤄지지 않을지라도 방향을 같이해 지역 먹거리, 텃밭 나눔, 에너지자립, 마을 정원, 지역화폐 등 다양한 전환을 실험한다면 선언은 유의미할 것이다.

2030년 교통 흐름이 원활해져 ‘날마다 1시간씩의 여유를 더 누리는’ 전환을 꿈꾸는 헬싱키 시민, ‘15분 안에 집에 돌아가 배우고 운동하고 자신을 돌보는 15분 도시’를 지향하는 파리 시민. 이들은 꿈을 꾸면서 거리와 공원에 변화를 줘 자전거를 타는 이를 늘리고 육류 소비를 줄일 뿐 아니라 텃밭을 활성화하는 등 사회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 일은 혼자서 이끌 수 없다. 함께 변할 수 있다고 믿고 각자의 자리에서 전환하는 일에 충실한 이들이 있어 가능하다.

2020년과 2021년의 경계에 서서, 지역에서의 전환을 꿈꾼다. 새해를 준비하며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꿈을 나눠보자.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다(눅 17:21)고 했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하셨다. 이를 믿고 나와 가까운 이들부터 시작해 어떤 모임에서든 전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독서나 영화 관람, 수다 모임을 새로 시작하며 지역전환의 꿈을 공유하자.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여기는 작은 프로젝트도 만들어 시작해보자.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계속 묻고 답하는 실험만이 꿈을 이루게 도와줄 것이다. 이들과 함께 변화를 요구하는 주님의 부르심에 진솔하게 응답하며 행동하는 가운데 우리가 사는 지역 또한 치유·재생되는 기쁨이 있으리라 믿는다.

유미호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