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검찰 개혁이었나, 아니면 윤석열 찍어내기였나

입력 2020-12-28 00:03
올 한 해 법조계는 ‘검찰 개혁’ 대 ‘총장 찍어내기’로 1년 내내 시끄러웠다. 인사 문제로 숱한 갈등을 겪었고 여러 차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이 박탈됐다. 검찰총장이 사상 초유의 징계를 받았으나 법원이 징계 집행 정지를 결정했다. 대검찰청 건물을 가운데 두고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있다. 연합뉴스

파면되는 대통령과 구속되는 대법원장, 묵비권을 행사하는 법무부 장관을 본 법조계 사람들은 “법조에서 일어날 일은 다 봤다”고 했었다. 현직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이 박탈되고 그가 수사와 감찰을 거쳐 징계되는 일은 예상하지 못한 단견이었다. 1년여간 진행돼온 그 일을 누군가는 검찰 개혁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검찰 흔들기라 불렀다.

1년여간 법조계의 일을 전하는 언론 기사 제목들은 ‘갈등’ ‘반격’ ‘판정승’ ‘치명타’ 따위의 낱말로 채워졌다. 혹자는 법조 기사가 아닌 정치부 기사인 듯하다고 했다.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관심을 끌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연예부 기사이거나, 권투 경기 전후의 체육부 기사 같기도 했다. 사실이 있어야 할 곳에 진영이 있었고 때로는 옳고 그름의 잣대를 좋고 싫음이 대신했다.

연말에 이르러 법원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의결 자체가 무효였다고 판단했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법정 구속하면서 “진실을 이야기한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고 했다. 검찰 개혁의 명분과 모순이 함께 보도된 가운데 법조기자단을 해체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년여간 진행된 검찰 개혁의 결과 달라진 것들은 다음이다. 이제 개혁의 방향은 언론과 법원을 향한다.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면…

윤 총장에 대한 퇴진 압박은 사실상 지난 1월 검찰 인사 때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검찰의 주된 시각이다. 법무부와 정치권이 윤 총장의 ‘항명’을 본격적으로 말한 계기도 검찰 고위·중간간부급이 대거 교체된 이 시기의 인사다. 인사 결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한 지휘부가 교체됐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사단을 해체했다” “사화에 가까운 숙청이다”는 양론이 맞섰다.

관점을 걷어내고 남은 것은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면 좌천된다는 메시지다. 또 검찰총장은 검찰 인사에서 사실상 인사안을 통보받는 데 그치게 된다는 선례도 남겼다. 윤 총장은 지난 1월 고위간부 인사위원회 개최를 불과 30분 앞두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중간간부 인사 때에는 핵심 현안을 지휘하는 이들을 유임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8월 인사 때에는 “윤 총장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별로 크게 보도되지도 않았다.

검찰이 ‘정권의 인사 보복’을 말하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다만 전례와 비교하더라도 올해는 유난히 인사의 메시지가 선명했다는 게 많은 법조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과거 정부에서도 있었지만 이때 대통령의 측근이나 인척을 수사한 이들의 인사 행보는 올해 벌어진 것들과 달랐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윤 총장에게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엄정하게 처리했다”며 “그런 자세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 총장은 지난 11월 법무연수원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도 엄정히 수사할 수 있는 검찰을 만드는 것이 검찰 개혁”이라고 말했다. 똑같은 말이 되풀이된 것이었지만 여권의 반응은 달랐다.

“수사지휘권 발동은 의당 이뤄진다”

올 한 해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여러 차례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해로 역사에 기록된다. 추 장관은 지난 7월 채널A 사건과 관련해 윤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지난 10월에도 라임 로비 의혹, 윤 총장 인척·측근 관련 사건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추 장관은 “수사지휘권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당연한, 의당 (행사)해야 하는 지휘권”이라고 국회에서 발언했다.

법조계에서는 “무엇하러 검찰총장을 두느냐”는 말이 많았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민주주의 원리에 반하고,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외적으로 쓰여야 할 수사지휘권이 빈번하게 쓰이다 보면 검찰의 정치적 예속화가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지난 7월의 채널A 사건 관련 수사지휘권 행사 당시에는 전국 고검장과 검사장들이 모여 격론을 주고받기도 했다. 검찰 고위 간부들의 결론은 위법 부당한 수사지휘권 행사라는 것이었다.

2005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로 김종빈 검찰총장이 사직했다는 전례도 회자됐다. 하지만 15년 전 사례와 올해의 사례는 장관이 지휘권을 행사하기에 이른 과정 자체에 차이가 있었다는 해석이 좀더 컸다. 당시는 수사가 무르익은 단계에서 핵심 쟁점을 놓고 장관과 총장이 허심탄회하게 견해를 주고받은 결과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행사됐다. 지휘권 행사 자체에 검찰총장을 향한 노골적인 사직 압박이 담기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윤 총장은 지난 7월 결국 ‘형성적 처분’이라며 추 장관의 지휘를 수용했다. 이때 법무부와 대검 사이에서 채널A 사건 수사팀을 지휘할 ‘절충형 특임검사’를 두는 방안이 합의됐던 것으로도 전해졌다. 법무부 검찰국이 오히려 먼저 대검의 발표를 요청했다는 말도 돌았지만 법무부가 부인하면서 미스터리로 남았다. 이렇게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을 독립 수사한 결과 가운데 하나는 수사팀장의 독직폭행 범행이었다.

비공개될 때도, 공개될 때도 있다

올해 들어 법조계 안팎에서 크게 변화한 관행 중 하나는 검찰의 주요 수사 사안 공소장을 비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추 장관은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국회로부터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 제출 요청을 받고 “형사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사건 관계인의 명예 및 사생활 보호, 수사 진행 중인 피의자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 가능성 등을 고려했다”며 원문을 제출하지 않았다. “조금 늦게 알 권리도 있다”는 설명이 동반됐다.

그에 앞서 지난해 12월 1일부터는 ‘형사 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시행됐다.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가 기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건 관련 내용을 설명하는 구두 브리핑을 하지 않게 하고, 공보자료와 함께 자료 범위 내에서만 구두로 공개하게끔 하는 것이 요지다. 이 같은 변화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수사가 기점이 된 것을 부인하는 이는 드물다. 검찰 수사선상에 청와대가 올랐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는 아무런 대국민 설명 없이 기소가 이뤄졌다.

검찰 내부의 일이 매번 비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추 장관은 서울중앙지검이 이른바 검·언 유착 사건 수사가 진행될 때 SNS에 “유착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본질은 검·언 유착”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기자 1명 구속 이후 수개월에 이르도록 검찰은 유착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개혁 필요성으로 지적된 ‘피의사실 흘리기’가 의심되는 사례가 나왔다. 윤 총장의 핵심 측근과 채널A 기자가 총선을 운운하는 대화를 나눴다는 한 방송사의 보도였다. 방송사는 오보임을 시인했는데 취재원이 현직 검찰 간부로 지목됐다.

압수수색영장을 둘러싼 구체적인 사실들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일도 있었다. 추 장관은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 의원 수사와 관련해 “서울대병원과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에 대해 재청구해서 발부됐고, 9월 29일 압수수색을 했다” “성신여대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 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국회에서 말했다. 최근에는 윤 총장의 징계의결서가 정치권을 통해 언론에 공개됐다. 검사의 징계 내용 요지가 유포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좋게 말하자면 여론이 법조를 우려하고 법조가 여론을 경계한 1년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각기 자신이 믿는 정의를 선택한 1년이었다. 기사가 특정 라디오 전파를 타거나 유명인의 SNS에 이름이 오르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욕설이 쏟아졌다. 동료를 욕하는 유명인의 SNS를 찾아가 ‘좋아요’를 누르는 이를 보면 세상이 이만큼 갈라졌구나 실감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서 법원이 정 교수의 판결을 선고해 주길 기다렸다.

그 결과 검찰 개혁을 부르짖던 이들은 이제 사법 개혁을 말하고 있다. 법원이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고 권력을 고수하기 위해 쿠데타를 벌였다는 주장이다. 과거 윤 총장의 적폐청산 수사 당시에는 없던 말이었다. 조 전 장관 수사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꼭 1년 전 “상식에 따라 진실을 밝히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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