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부터 세종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해온 A씨는 지난달 계약 갱신을 앞두고 용역업체로부터 “기존 경비원 계약을 종료하고 미화원으로 새로 계약해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업체 측은 “경비업법상 경비원이 분리수거, 주차관리 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분리수거와 청소를 전담할 미화원을 새로 고용해야 한다”는 이유를 댔다. A씨는 “명목은 미화원이지만 근무시간을 줄여 계약을 맺은 뒤 사실상 더 저렴한 인건비로 같은 일을 시키려는 속셈 아니겠냐”고 토로했다.
아파트 경비원들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일환으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내년 10월부터 시행된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주차관리, 분리수거 등 경비 외 업무를 하는 것을 금지하는 경비업법이 되레 고용불안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아파트 경비원에 한해서는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자는 게 개정안의 취지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을 틈타 아파트 경비원 수를 줄이려는 ‘꼼수’가 횡행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사는 B씨는 이달 초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기존 경비원 15명 대신 관리원, 주차관리원 등 총 9명으로 전환해 고용하겠다”는 안내를 받았다. 경비업법에 따라 기존 경비원의 직종을 전환한다는 핑계로 아파트 관리 인원을 줄이게 된 것이다.
아파트 경비를 아예 자동시스템으로 대체하면서 연령대가 높은 경비원들이 해고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C씨가 사는 경남의 한 아파트에서는 지난 6월 경비업체의 통합경비시스템으로 교체하느라 기존 경비원 10여명을 한꺼번에 해고했다. B씨는 “경비업법상 어차피 경비원이 경비 외에 다른 업무를 맡을 수가 없고, 다른 직종의 인력을 추가로 뽑아야 하니 자동시스템을 도입해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는 논리를 댔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고용 불안정을 낳은 것은 역설적으로 경비원들의 인권을 향상하기 위한 법안이었다. 2018년 법원은 경비원에 대한 사회적 갑질을 막는다는 취지로 아파트 경비원에게 경비 외 업무를 지시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를 핑계로 경비원을 해고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국회는 공동주택관리법을 개정해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에 다른 아파트 관리업무도 맡을 수 있도록 했다.
한영화 변호사는 “경비원, 입주민들 사이에 실제로 개정법안을 아직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경비원의 고용 보장, 입주민의 관리비 부담 축소라는 상생의 측면을 홍보한다면 개정법안이 원활히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두섭 변호사도 “아파트 경비원의 고용불안 요소는 대부분 1년 미만의 짧은 계약기간과 대부분 위탁관리업체 또는 도급업체와 이중·삼중으로 계약을 맺는 복잡한 고용구조에 있다”며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에 더해, 이전부터 계속돼온 아파트 경비원의 고용 불안정과 인권 침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을 더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