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대북 제재법의 목적 중 하나는 북한 인권 향상이다. 현재 미국은 총 14개의 국내법을 통해 북한을 제재한다. 흔히 미국이 북한을 제재하는 이유가 북한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테러 지원, 비시장경제, 인권 문제도 주요 이유다. 미 의회가 포괄적 대북 제재 형태로 2016년 2월 통과시킨 ‘북한 제재와 정책 강화법’은 2017년 5월 ‘대북 차단 및 제재 현대화 법안’으로 강화된 후 같은 해 8월 ‘제재를 통한 미국의 적성국 대응법’에 포함됐다. 대북 제재 강화법이라고 통칭하는 이 법안에는 북한과 거래하는 제3자도 처벌할 수 있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도 들어 있다. 더불어 2016년 이후 본격화된 유엔 대북 제재와도 연동돼 있다. 예를 들면 유엔 결의안을 위반하는 개인, 단체 등을 미 대통령이 재량에 따라 제재할 수 있다.
미 의회는 행정부가 대북 제재를 유예·해제하려면 반드시 북한 인권 향상의 전향적 조치가 선행되도록 조건을 부과한다. 미 행정부가 대북 제재 강화법을 1년 유예하기 위해서는 6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 가운데는 ‘정치범 수용소 생활 환경 개선 등의 진전’이 포함돼 있다. 제재의 완전 해제를 위해서는 ‘정치범 수용소의 모든 정치범 석방’ ‘평화로운 정치적 활동에 대한 검열 중단’ 등을 포함한 5가지 조건이 추가된다. 미 행정부는 의회에 조건이 충족됐음을 증명해야 한다.
종합하면 북·미 회담이 재개돼 합의를 도출하고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북한 비핵화 조치가 이행되더라도 미 의회는 북한 인권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제재를 유예하거나 해제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에 초점을 맞춘 유엔 안보리 제재가 해제되더라도 미국의 대북 독자 제재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핵심인 북·미 관계 개선은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이 북한을 제재하면서 이뤄지는 관계 개선은 초보적 수준을 넘을 수 없다.
미 의회가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인권 요소를 고려토록 한 역사는 오래됐다. 미 의회는 1961년 무기 이전과 인권을 연계한 해외원조법 502B항을 제정한 바 있다. 이 안은 “미국이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인권을 지속적으로 심각하게 위반하는 국가의 정부를 상대로 군사원조와 무기 판매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닉슨 행정부와 포드 행정부가 준수를 거부하자 미 의회는 1978년 502B를 강제조항으로 만든 바 있다.
문재인정부와 여당은 북한 인권 향상을 위한 정보 유입을 극도로 제한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일명 ‘대북전단 금지법’에 미 의회가 반발하고 청문회 개최를 추진하자 “내정간섭”이라고 거칠게 비난하고 있다. 미 의회는 북한 인권 개선을 목표로 지난 4년간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을 통해 북한 인권단체에 1100만 달러를 지원한 바 있다. 또한 자유아시아방송(RFA)을 통한 대북 방송도 강화하고 있다.
미 의회의 비판에는 문재인정부의 북한 인권에 대한 철저한 외면이 실질적 배경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북한인권법을 사문화해 북한인권재단은 출범도 못 했고, 북한인권 국제협력대사도 임명하지 않고 있다. 북한인권법 13조 2항에 북한 인권 관련 정보의 수집·연구·보존·발간이 명시된 북한인권기록센터는 아예 ‘발간’을 설립 목적에서 빼버리고 소개 책자만 올리고 있다. 16년째 지속되는 유엔 북한인권개선 촉구 결의안의 공동 제안국에서 한국 정부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이름을 뺐다. 상황이 이럴진대 문재인정부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미 의회와 싸우려 든다. 어이없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