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제주 감귤

입력 2020-12-28 04:05

요즘 제주는 감귤 수확철이지만 농민들은 우울하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관광객이 줄어든 데다 감귤이 팔리지 않아 수확을 포기하는 농장까지 늘어간다니 여간 걱정이 아니다. 제주 특산의 감귤 재배 면적이 줄어드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제주의 감귤 재배 역사는 유구하다. 감귤은 고려 때 탐라에서 조정에 진상했으며 해마다 정기 세공 품목에 들어 있었다. 조선 태조 원년에 제주에서 귤을 공물로 바쳤으며 세종 때에는 유자와 감귤나무 심기를 권장했다. 감귤은 외국 사신이 왔을 때 접대용으로 썼을 정도로 귀한 과일이었다. 현재 우리가 먹는 온주밀감을 처음 들여온 사람은 프랑스 외방선교회 소속의 타퀘 신부다. 그는 1911년 일본에서 활동하던 포리 신부에게 왕벚나무 표본을 보내고 감귤나무 묘목 14그루를 답례로 받았다. 서귀포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분원 뜰에 귤원을 조성하고 가난한 신자들에게 감귤나무 재배법을 전수했다.

제주에서 널리 심는 밀감 품종은 껍질이 얇고 당도가 높아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초기에는 바람이 센 제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실패를 거듭했으나 밭 가장자리에 삼나무 방풍림을 조성해 비로소 재배가 가능해졌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감귤나무는 황금이 열리는 나무로 생각했을 정도로 고소득 과수였다. 요즘에는 감귤나무를 베어내면 보상금까지 준다. 과잉 생산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니 농민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과수원에서는 쉽게 작목을 바꿀 수 없다. 수십 년을 가꿔야 경제성 있는 과일을 생산할 수 있다.

감귤이 점차 사라지고 외래 수입산 오렌지나 자몽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농민들로 하여금 눈물짓게 하는 일이 아닌가. 제주의 지인이 말했다. 감귤 10㎏ 한 상자에 1만5000원, 여기에 운송료만 더하면 어디든 보내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절박하면 이렇게 호소할까. 귤을 먹으면 감기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전화를 해야겠다.

오병훈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