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문화계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첫 문장처럼 상반된 한 해를 보냈다. “최고의 시절이면서 최악의 시절”이었고,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방탄소년단(BTS)의 미국 빌보드 ‘핫 100’ 1위,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일본의 4차 한류 붐 같은 영광 뒤에는 코로나19에 휩쓸린 영화·공연계의 아픔이 있었다. 올해 문화계 뉴스를 10개 항목으로 정리했다.
① BTS, 빌보드 정상과 그래미 지명
BTS는 미국 빌보드 ‘핫100’에서 세 차례 1위에 올라 한국 음악사를 새로 썼다. 첫 영어 노래인 ‘다이너마이트’로 9월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10월에는 피처링에 참여한 ‘새비지 러브’ 리믹스로 다시 정상을 밟았다. 11월에는 한국어 곡인 ‘라이프 고즈 온’마저 정상에 올렸다. 글로벌 스타로서 입지를 확고히 한 BTS는 다음 달 열리는 제63회 ‘그래미 어워즈’ 후보로도 처음 선정됐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역시 ‘올해의 엔터테이너’로 BTS를 선정해 그래미 어워즈 수상 기대를 높였다.
②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
영화 ‘기생충’은 올 2월 세계 영화계를 뒤흔들었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들어 올린 봉준호 감독은 상업 영화 중심지 할리우드에서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석권하며 영화사를 다시 썼다. 92년 동안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작품상·국제영화상을 동시 수상한 것도 최초였다. 또 ‘짜파구리’를 비롯해 통역사 샤론 최, 영문자막을 붙인 평론가 달시 파켓 등 ‘기생충’의 모든 것이 인기를 누렸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된 건 “1인치의 자막을 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봉 감독의 재치 있는 수상소감이었다.
③ 코로나19 시대 ‘게임체인저’ OTT
요즘 TV 앞에 앉아 드라마를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여기다 코로나19 여파가 겹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무료함을 달래주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장은 팽창했다. 현재 넷플릭스를 비롯해 국내 기반의 웨이브·티빙·왓챠, 숏폼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카카오TV 등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당분간은 넷플릭스의 독주가 예상된다. 세계 190여개국에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고, OTT 성패가 달린 오리지널 콘텐츠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변수는 디즈니플러스다. 내년 국내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④ 온라인으로 들어간 예술계
올해 뮤지컬·오페라·연극·클래식·무용·미술 등 예술계는 코로나19로 신음했다. 확진자가 나와 공연을 일시 중단하거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조기 폐막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등 국공립공연장과 국공립미술관·박물관도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휴관과 재개관을 반복했다. 공연계는 온라인에서 활로를 모색했다. 스트리밍을 겨냥해 제작한 영상을 유튜브나 최근 후원 라이브 기능이 생긴 네이버TV에서 선보였다. 9월에 열리는 한국 3대 비엔날레 가운데 광주비엔날레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취소돼 내년을 기약했고 부산비엔날레는 강행해 온·오프라인 행사를 병행하며 선전했다.
⑤ 트로트 열풍… 테스형 신드롬
지난해 TV조선 ‘미스트롯’이 쏘아 올린 트로트의 인기가 올해 ‘미스터트롯’으로 폭발했다. 톱 7(임영웅·영탁·이찬원·김호중·정동원·장민호·김희재)가 고르게 인기를 얻으며 트로트 대중화를 이끌었다. 열풍은 모든 방송사로 흘러갔고 ‘보이스트롯’(MBN), ‘트로트의 민족’(MBC), ‘트롯신이 떴다’(SBS) 등 관련 예능이 줄줄이 탄생했다. 돌풍의 정점은 나훈아가 찍었다. 지난 9월 KBS 2TV 한가위 특집에 그가 등장했다. 방송 출연은 무려 15년 만이었다. 그는 여전한 가창력과 쇼맨십으로 대한민국을 ‘테스형(나훈아의 신곡) 신드롬’으로 몰아넣었다.
⑥ 도서정가제 재연장…책 판매 증가
올해는 도서정가제 3년 주기가 돌아오는 해였다. 11월 개정 시한을 앞두고 정부가 민관협의체의 기존 안을 재검토하려 했으나 출판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양측은 기존 제도의 큰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제도의 핵심인 할인율(가격 할인+마일리지 등)을 15% 이내로 하는 기존 방식을 그대로 가져간 것이다. 한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도서 판매는 늘었다. 교보문고의 책 판매는 전년 대비 7.3% 증가했는데 코로나19 관련 서적을 비롯해 재테크 관련 서적, 학습서 등의 판매가 크게 늘었다.
⑦ 흥행공식 자리 잡은 ‘부캐’
올해 예능계 핵심 키워드는 캐릭터였다. 기존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자아를 의미하는 ‘부’(附)캐릭터다. 부캐는 예능인 한 명이 다양한 캐릭터로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된 계기가 됐다. 흥행의 시작은 지난해 MBC ‘놀면 뭐하니?’ 유산슬(유재석)이었다. 올해 그는 그룹 ‘싹쓰리’의 유두래곤, ‘환불원정대’의 제작자 지미유로 변신했다. 두 그룹에서 활약한 이효리는 각각 린다G와 만옥으로 활동했다. ‘카피추’의 정체는 MBC 공채 개그맨 추대엽이고, EBS가 낳은 ‘펭수’도 사실상 부캐다. 김신영은 트로트 가수 ‘둘째이모 김다비’로 변신했고, 신봉선은 ‘캡사이신’이 됐다. 부캐를 주제로 한 웹예능 ‘부캐선발대회’가 등장하기도 했다.
⑧ 재정난에 경매 나온 ‘간송’ 보물
‘일제 강점기 문화재 지킴이’ 간송 전형필의 후손이 보물 불상 2점을 지난 5월 K옥션 경매에 내놓으면서 문화계는 충격에 빠졌다. 재정난과 상속세 부담으로 간송이 수집한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을 각각 시작가 15억원에 내놓았으나 모두 유찰됐다. 간송 소장품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가 경매에 나온 건 처음이었다. 결국 몇 달 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이 사건은 미술품·문화재로 상속세를 내는 물납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됐다.
⑨ 세계로 뻗은 K드라마
코로나19 침체에도 드라마 한류만은 예외였다.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의 신(新)한류로, 일본·인도네시아 등 국지적으로 확산하던 형태에서 범세계적으로 나아갔다. 올해 K드라마 열풍은 K좀비 신드롬을 이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2’에서 시작됐다. 넷플릭스의 대중화는 K드라마의 확산을 부채질했고,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등 줄줄이 넷플릭스를 발판으로 세계로 향했다. K드라마의 공통점은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킹덤’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고, ‘사랑의 불시착’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가 배경이 됐다.
⑩ 유튜브 ‘뒷광고’와 웹툰 ‘여혐’ 논란
올 8월 뒷광고 파문이 유튜브를 휩쓸었다.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이 영상에서 수천만원의 광고비를 받고도 자신이 산 것처럼 속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른 인기 유튜버들도 줄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어 뒷광고가 발각된 양팡 엠브로 햄지 파뿌리 나름 등 대형 유튜버들이 사과문을 올리고 자숙에 들어갔다. 1조원 규모의 웹툰에는 여성혐오 논란이 일었다. ‘성상납’을 연상케 하는 연출이 담긴 기안84 ‘복학왕’과 여성 노인 고문 등 성적대상화와 가학성이 드러난 삭의 ‘헬퍼’ 시즌2로 여론이 들끓었다. 네이버는 “더욱 주의 깊게 보겠다”며 사과했으나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손영옥 김현길 박민지 강경루 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