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이 사회 구석구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한 해였다.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든 날들이다. 낯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사회 구석구석 어느 한 곳도 손 놓고 지내지는 않았다. 기업들은 빠르게 변화에 대처해 갔고, 소비자들도 금세 함께 대응해나갔다. 생활 밀착형 플랫폼인 편의점의 변화를 살펴보면 코로나19 시대의 뉴노멀을 되짚어 볼 수 있다. 올해의 변화에 비춰 내년에는 어떤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지 짐작해 볼 수도 있겠다. 코로나19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편의점을 사용하고 편의점은 어떤 변화를 이끌어 왔을까.
집 앞 편의점에서도 ‘배달’해드립니다
생후 6개월 남짓 지난 둘째와 3살 첫째를 키우는 구지은(35)씨는 편의점 배달 서비스를 애용한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코로나19 확산이 심해진 뒤 외출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소소한 간식, 간단한 생활용품은 편의점 배달을 이용한다. 구씨는 “집 앞 편의점도 나가기 힘든 사람들에게 편의점 배달은 꽤 쏠쏠하다”고 말했다.
집·회사·학교 근처에 있어서 접근성이 뛰어난 편의점과 배달 서비스는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얘기가 달라졌다. 구씨처럼 편의점 배달이 간절한 사람부터 배달 서비스 자체에 익숙한 이들까지 수요가 다양해지면서 시장이 커졌다. 27일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5대 편의점(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미니스톱) 모두 요기요·부릉·카카오톡 주문하기 등과 협업해 배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 1월 편의점 업계에서 가장 먼저 배달 서비스를 실시한 CU는 전국 6000개 점포에서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배달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로 시간제한을 뒀으나 수요가 늘면서 배달 가능 시간도 24시간으로 늘렸다. 3000개 CU 점포가 24시간 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다.
GS25도 5000여개 점포에서 배달 서비스 중이고 이 가운데 2000여개 점포가 24시간 배달을 하고 있다. 자체 제작한 보냉백과 아이스팩으로 아이스크림도 배달 가능하다. GS25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최근 한 달 동안 배달 서비스 이용 건수가 지난 3월보다 3.7배 이상 증가했다.
GS25는 누구나 편의점 배달에 참여할 수 있는 ‘우리들의 딜리버리’(우딜) 서비스를 지난 8월 론칭해서 호응을 받고 있다. 우딜 배달 인력인 ‘우친’ 등록자는 지난 14일 기준 4만5000명을 넘어섰다. 10대부터 90대까지 배달자로 등록하면서 배달 서비스 강화에 동참했다.
편의점에서 회 배달 접수도 가능하다. 세븐일레븐은 전국 3000여개 점포에서 편의점 먹거리를 배달할 뿐 아니라 ‘회 주문접수 서비스’도 시행 중이다. 세븐일레븐은 스타트업 ‘바다드림’의 배달 서비스 플랫폼 ‘회이팅’과 제휴해 세븐일레븐 점포에서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의 회 주문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처음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회 배달 이용 건수는 175% 증가했다.
주문·결제·수령까지 비대면으로
코로나19가 불러온 뉴노멀로 가장 달라진 점은 비대면 강화다. 편의점 업계도 직원과 손님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일찌감치 내놓았다. 매장마다 가림막을 설치해 감염 가능성을 줄였고, 이마트24는 아예 셀프 계산대를 꾸려놓기도 했다.
현장에서 비대면 결제도 가능해졌다. 편의점 업계와 네이버 등의 협업으로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른 뒤 카드나 현금을 주고받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결제할 수 있게 됐다. CU는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모바일 앱 ‘오윈’에서 미리 상품을 주문한 뒤 편의점 앞에 도착하면 근무자가 차량 창문으로 물건을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편의점은 코로나19 이후 일종의 창고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CU는 소비자의 물건을 대신 수납해주는 일종의 공유창고형 보관 서비스 ‘CU 마타주 셀프 접수’를 도입했다. 공유창고에 보관할 물건을 CU의 택배기기를 활용해 접수하면 된다. 지난달 마타주 서비스 이용 건수는 도입 초기인 지난 4월보다 2.4배가량 증가했다.
GS25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한 신선 상품을 냉장 상태로 편의점에서 찾아갈 수 있는 냉장 택배함 ‘BOX25’를 운영하고 있다. GS25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신선식품을 주문하는 경우가 증가한 데다 택배를 받을 때 비대면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냉장 택배함을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GS25는 서울·경기 지역에서 세탁소의 세탁물을 보관해주는 ‘세탁특공대’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다.
신선식품·수제맥주·와인·야식…편의점에 다 있다
편의점은 10~30대 소비자에게 친숙한 곳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이용객의 연령층이 대폭 확대되면서 편의점은 ‘장보기’에도 좋은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마트24가 지난 1월부터 지난 17일까지 판매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가정간편식(HMR)을 비롯한 가공식품, 냉동식품, 즉석밥, 봉지면 등의 매출이 전년 대비 최대 80%까지 증가했다. 채소와 조미료 등의 매출도 60~70% 정도 늘었다.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오른 뒤 편의점을 이용한 장보기 수요는 더욱 증가했다. CU에 따르면 지난 8~20일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먹거리 상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생필품 매출이 최대 40%가량 증가했다. 반찬류 40.4%, 덮밥·국밥류 33.8%, 조미김 22.5%, 국·탕·찌개류 28.1%씩 매출 상승을 보였다. 과일과 채소 매출도 각각 8.7%와 13.1% 늘었다.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족’이 증가하면서 편의점의 수제맥주와 와인 수요도 급증했다. CU에 따르면 지난 1~22일 주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1% 늘었다. 와인 매출은 188.4%나 증가했고 수제맥주 신장율은 407.2%를 기록했다. 홈술족의 증가로 편의점 업계는 ‘스마트 오더’ 서비스도 시행 중이다.
편의점 업계 한 관계자는 “예측하지 못했던 코로나19 상황에도 업계가 발 빠르게 대응해 나가면서 힘든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었다”며 “올해 갖춰 놓은 기반들을 토대로 내년에도 비대면 서비스 강화, 생활 플랫폼으로서 역할 증대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