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하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계 1:8)고 하셨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다. 역사는 스스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를 지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과거의 역사를 지배해 오셨고 미래의 역사도 지배하실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지난 교회사와 기독교 교육을 등한시한다. 교회역사와 성경적 교육에 크게 관심을 두지도 않고, 소위 세상적 성공을 향해 몸부림친다. 하지만 역사 교육을 소홀히 하는 나라가 쉽게 무너지듯 교회역사와 성경 교육을 소홀히 하는 교회도 오래갈 수 없다.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인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 제54 문답은 이렇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를 모으시고, 보호하시며 지키신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5장 1항은 이렇게 고백한다. “위대하신 만물의 창조자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행위들과 사물들을 그 가장 큰 것에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보존하시고, 지도하시고, 처리하시며 통치하신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그의 역사’(His story)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그리스도의 통치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없다.
한국장로교회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비진리와 타협을 거부하고 목숨 건 순교 신앙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많은 교회가 그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다원주의, 세속주의, 인본주의의 거센 도전과 코로나19라는 위중한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 특히 남북통일과 세계선교의 일꾼을 길러낼 책무가 있다. 우리가 어떤 신학과 사명감으로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따라 한국교회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선교 초기부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전하는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움으로 큰 복을 받았다. 1884년 첫 선교사가 들어온 때부터 20여년 동안 한국에 들어와 복음을 전한 선교사 대부분은 청교도형의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분들이었다.
저들은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는, 그 시대의 근본주의자였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조선 선교 시작 30년을 넘어서면서부터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선교사들이 차츰 모습을 드러낸다.
1910년대 북장로교 소속 공위량(William C Kerr)은 소위 과학적 성경해석법을 도입해서 홍해가 갈라진 것이 간조 현상이었다고 가르쳤다. 캐나다 연합교회 소속 서고도(W Scott)도 26년에 성경에는 역사적 과학적 오류가 있다고 가르쳤다.
34년에는 김재준이 장로교 신학기관지인 ‘신학지남’에 ‘이사야의 임마누엘 예언 연구’란 글을 내면서 성경의 ‘축자영감’을 부인했다. 같은 시기 남대문교회 목사 김영주도 모세의 오경 저작을 부인했다. 38년에 장로교가 제27회 총회 때 신사참배를 가결함으로써 한국 장로교회의 장래는 어두워진다.
자유주의 신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말씀을 순종하고 살기보다는 자신의 합리적 사고를 따른다.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한 후 친일적 지도자와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는 이들이 교회를 지배했다.
한국교회는 이제 생명을 살리는 개혁주의 신학을 재건해야 한다. 생활의 정화를 통해 영적으로도 재건돼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개혁신앙교육을 통해 다음 시대를 책임져야 한다.
그동안 역사적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오늘의 교회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신사참배와 관련된 세대는 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과 상대주의적이고 포괄주의적인 신학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교회 개혁과 갱신이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리고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과 같은 이단이 우리 교회 주변을 파고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전통적인 개혁신학을 파수하고, 개발하며, 계승할 사명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 선조의 신앙고백과 생명을 살리는 정통 개혁신학, 생활의 순결을 강조해야 한다.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기독대안학교 운동을 왕성하게 펼쳐야 한다.
교육의 위기 앞에서 수많은 대안학교가 생기고 있다. 현 상황에서 대안학교를 계속 만들어 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 어떻게, 어떤 신앙으로 진정한 기독교교육을 제공하느냐는 것이다.
우선 신명기 6장, 시편 72편, 잠언 1~3장, 에베소서 6장 말씀처럼 가정에서 기독교 세계관이 회복돼야 한다. 가정 다음으로 자녀 양육의 권위를 부여받은 교회에선 집중적인 말씀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
그리고 가정,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기독학교에선 믿음의 유산을 전하기 위해 전인교육을 해야 한다. 가정과 교회, 그리고 학교, 이 세 기관이 일치된 교육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분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