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천국, 느려도 같이

입력 2020-12-28 03:04

몽골에 온 지 3년 차에 경험했던 일입니다. 안전을 이유로 사역을 나설 때 가능하면 교회 차량을 이용했지만, 그날은 처음으로 장거리 시외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목적지까지 편도 8시간을 가야 해 아침 일찍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 타기 전 물 한 병을 샀습니다. 처음 방문한 터미널은 모든 게 신기했습니다. 한국이라면 폐차를 했을 법한 45인승 버스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번호판을 확인한 뒤 버스에 올랐습니다. 갓난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이미 30명쯤 타 있더군요. 좌석표를 확인하지 않고 맨 뒷자리에 앉았더니 검표원이 자기 자리로 가라고 했습니다. 머쓱해져 표를 보니 좌석이 적혀 있었습니다.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출발 전 교통경찰이 일일이 승객 검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출발 시각이 지났는데도 기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디 있나 봤더니 출입구 앞에 서서 어디엔가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 통화 내용이 들렸습니다. 기사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3명의 승객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몽골은 버스표를 살 때 탑승자 전화번호를 적게 돼 있어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겁니다.

기사는 오지 않은 승객들에게 어디쯤인지를 묻고는 더 기다리지 않고 버스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기다릴 수 없으니 출발하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버스가 목적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잠시 후 길에 버스를 세우더니 한 사람을 태웠습니다. 나머지 두 명의 승객도 이런 식으로 차례차례 버스에 태웠습니다. 이들이 모두 탄 뒤에야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방향을 잡았습니다.

한국 같았으면 바로 출발했을 겁니다. 표를 샀어도 늦게 온 것이니 제시간에 출발한 기사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게 사실 맞습니다. 하지만 몽골은 달랐습니다. 승객이 도착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들을 두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더욱 놀랐던 건 버스에 있던 다른 승객들이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선교사로서 그날 아침 적지 않은 충격과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동안 지녔던 복음과 선교에 대한 가치관도 변했습니다. ‘그래, 복음도 선교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 세상도 이렇게 기다려주고 심지어 승객을 데리러 가는데 교회와 선교는 뭐가 그리 급하고 바쁜지 성장과 부흥만 외치고 있을까.’ 늦으면 실패라고, 게을러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고 심지어 늦으면 천국 문이 닫힌다고까지 말하며 전진과 직진, 빨리 빨리라고 외치며 복음을 변질시키진 않았는지 반성하게 됐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기다려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는 우리를 은혜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또 천국행 버스에 우리를 태우시려 기다리시고, 일일이 연락하시는 분이며 결국은 찾아가십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 같이 제시간을 맞추지 못한 지각 승객들 아니겠습니까. 혹시 나는 이미 천국행 버스에 타 있으면서 아직 오지 못한 이들을 비난하고 두고 가자고 불평하지 않았는지 돌아봅시다.

오늘 메시지가 모국의 교회와 선교지에 나타나길 마음을 모아 기도합니다. 우리는 모두 기다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느려도 같이 가는 천국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늦어도 함께 가야 하는 그곳,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동식 선교사(몽골 울란바토르)

◇이동식 목사는 서울 강북구 덕수교회 파송을 받아 몽골 울란바토르 은혜수련원과 이삭교회에서 선교훈련과 신앙교육, 사회봉사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