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시간 많았던 올해, 한 권쯤 더 읽고 싶다면…

입력 2020-12-24 19:30 수정 2020-12-24 19:37
선택과 배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한 해 동안 나온 수만 권(2018년 기준 6만3000여권)의 책 중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 받는 복 받은 책은 극소수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권하는 사회’가 되면서 책 판매가 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펼쳐들지 못한 책들이 대다수다.

국민일보는 올해 출간된 책들 중 더 많은 선택을 받았으면 좋았을, 아쉬움을 남긴 책들을 모았다. 온·오프라인 서점 네 곳(교보문고·알라딘·예스24·인터파크)으로부터 5권씩 추천 받았다. 별도로 분야를 정하거나 나누진 않았다. 이조차 선택에 따른 배제를 피할 수 없고, 주관성을 띨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혹 놓친 좋은 책이 없는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주시길.

교보문고 추천


낯선 식물을 제목에 포함한 ▲‘향모를 땋으며’(에이도스)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식물학자의 이야기다. 시골 소녀가 대학 식물학과에 들어가 과학자의 길을 가는 이야기, 강제 이주 등 선조들이 겪은 고난의 흔적을 더듬으며 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교차한다. “식물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라는 저자는 “식물을 잃는 건 언어를 잃는 것만큼이나 문화에 위협적”이라고 말한다. 김현정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베스트셀러 담당은 “이 땅을 대하는 겸손과 경외의 태도가 어우러진 풍족한 과학 에세이”라고 평했다.


▲‘거대도시 서울 철도’(워크룸프레스)는 세계 거대도시 철도 50곳을 분석한 후 서울의 철도망 등 한국의 철도를 들여다본다. 국내 철도의 역사를 촘촘히 나눠 분석한 후 총 946㎞에 달하는 철도망 계획을 제안하기도 한다. 철도와 무관한 철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 역시 흥미롭다. 저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2013년 철도 파업 과정을 본 것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연필’(서해문집)은 공학자로서 일상의 사물에서 공학의 역사와 의미를 찾아내는 저자의 책이다. 책상 위에서 쉬이 찾아볼 정도로 흔하지만 강력한 도구인 연필을 다룬다. 수많은 미술 작품과 건물 등의 탄생을 예고한 도구이지만 정작 자신은 어떻게 설계됐는지 모르는 연필에 대한 백과사전이라 부를 만하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웅진지식하우스)은 기술과 노동, 의료 등 16가지 영역에서 여성에 관한 데이터 공백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그냥, 사람’(봄날의 책)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한 저자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연약하고 힘없는 이들의 삶을 정직하고, 서정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과 문장이 감동을 준다.

알라딘 추천


▲‘태양계가 200쪽의 책이라면’(세로)은 책의 물성을 활용해 그간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태양계의 모습을 실제 형태에 가깝게 재배치한다. 책장 한 장 한 장이 태양과 행성이 존재하는 공간이자 행성 간 거리를 나타내는 자로 기능한다. 거리 축적을 1000억 분의 1로 해 한 장을 넘길 때 마다 그만큼 우주를 여행하도록 만들었다. 교과서에서 접하지 못한 최신 탐사 정보 등도 반영했다. 읽고 나면 태양계가 전과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김경영 알라딘 MD는 “상냥한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 우주를 여행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시와 산책’(시간의 흐름)은 저자가 시를 읽고, 산책을 하고, 산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한 시간이 담긴 산문집이다. 저자가 사랑한 시인, 가끔 소리 내 읽던 시어와 산책을 떠나는 기분을 느길 수 있는 책이다. 앞 사람의 단어를 이어 받아 새로운 낱말을 제시하는 ‘말들의 흐름’ 네 번째 시리즈다.


▲‘아무튼 언니’(제철소)는 전작 ‘경찰관속으로’에서 경찰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의 맨 얼굴을 드러낸 저자의 두 번째 책이다. 저자는 혈연으로 맺어진 친언니부터 학교, 사회에서 만난 수많은 여성들에 관한 에피소드로 언니의 존재를 확장한다. 다양한 언니들을 통해 언니와 나, 우리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들려준다.


▲‘더 셜리 클럽’(민음사)은 같은 이름을 가진 이국의 할머니들로만 이뤄진 클럽에 가입한 스무 살 한국인 ‘설희’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은 피부와 세대 등을 뛰어넘어 우리가 되는 연결과 연대를 경험한다.


▲‘짐을 끄는 짐승들’(오월의 봄)은 장애인인 저자가 겪은 통찰을 동물들이 겪는 억압과 폭력으로 확장한 책이다. ‘비장애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해 ‘인간 편향성’마저 넘어선다.

예스24 추천


▲‘윤이후의 지암일기’(너머북스)는 윤선도의 손자이자 윤두서의 생부인 윤이후가 1692년 1월 1일부터 1699년 9월 9일까지 매일 쓴 일기를 완역했다. 당시 일상을 섬세하면서도 풍부하게 기록해 조선후기 일상사의 ‘보물창고’라 할 만한 책이다. 오랜 기근과 전염병에 대한 참혹한 풍경 같은 사회상뿐 아니라 병든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안타까운 시선 등 인간적인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손민규 예스24 인문사회/역사 MD는 “기근과 환난, 고통과 절망 사이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그때와 지금이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본과 이데올로기’(문학동네)는 전작 ‘21세기 자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선 본격적으로 불평등을 이데올로기로 정당화해온 역사를 추적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부의 불평등이 고정불변이 아니라 아니라는 점을 드러낸다.


▲‘한 권으로 끝내는 디지털 경제’(와이즈맵)는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 등에 대한 최신 정보를 담았다. 디지털 경제를 구성하는 핵심 기술과 용어 해설, 주요 인물과 브랜드 등을 차곡차곡 쌓았다.


▲‘스타인웨이 만들기’(프란츠)는 뉴욕타임스 기자이면서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 저자가 명품 피아노 ‘스타인웨이’ 제작과정을 11개월 간 관찰하며 쓴 책이다. 나무가 한 대의 피아노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제작된 피아노가 어떤 무대에서 데뷔하고, 변해 가는지도 보여준다.


▲‘포스트 피크’(청림출판)는 기술 발전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한다. 덜 쓰면서 더 많이 생산하는 여러 통계를 제시하며 기술과 자본주의의 결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인터파크 추천


▲‘다시 만날 때’(그레이트북스)는 랩을 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인 저자의 노래에 그림을 입힌 그림책이다. 책 제목은 갓 부임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떠나보내며 부르는 사랑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보낸 1년의 시간과 마음들이 담겨 있다. 코로나19로 학교에서의 일상 역시 쉽지 않았던 올 한해 더 애틋하게 느껴질 수 있는 책이다. 송현주 인터파크 도서사업부 차장은 “코로나로 일상을 빼앗긴 아이들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견뎌주어서 고맙다고, 곧 다가올 일상이 더욱 눈부실 수 있도록 조금 더 건강하게 지내보자고 이야기해본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곁에 두고 읽는 인생 문장’(중앙북스)은 인생에 대한 화두를 38가지로 나눠 지혜와 통찰을 담은 명문장을 엄선해 소개한다. 소크라테스와 괴테, 니체, 카를 융, 피터 드러커, 스티브 잡스 등 500여명의 명언과 격언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었다.


▲‘사람에 대한 예의’(어크로스)는 저자가 자신을 미화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부끄러움과 위선을 낯선 시선으로 성찰하는 책이다.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인식하게 된다. 저자의 성찰을 통해 우리가 당연시해온 생각과 소홀히 했던 사람들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맘이 편해졌습니다’(골든어페어)는 세계적인 육아 전문가인 저자가 여러 나라의 어린이와 가정을 상담하고 코칭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담긴 책이다. 저자는 비료를 너무 많이 뿌린 토양이 오히려 황폐해진다며 ‘단순 육아’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잃어버린 이름에게’(문학과지성사)는 신도시에 거주하는 중년 여성 4명이 느끼는 소외와 상실을 세밀하게 다룬 연작 소설집이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던 여성들에게 연대를 통한 위로와 성찰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