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꾼 시장이론을 간단명료하게 기술한 설명서

입력 2020-12-24 19:31 수정 2020-12-24 22:48

“경매이론을 개선했고, 새 경매 형태를 발명해 전 세계 매도자와 매수자, 납세자에게 혜택을 제공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밀그럼과 로버트 윌슨에 대한 노벨위원회의 수상 이유 일부다. 비전공자 입장에선 ‘경매이론’이라는 말 자체도 낯설거니와 요령부득인 문장이다. 해설 기사에서 이들의 업적을 추가로 접할 순 있지만, 그 내용이나 맥락까지 이해하긴 쉽지 않다.

‘시장의 속성’은 주요 경제학 논문과 그 논문을 쓴 경제학자의 이론을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해주는 책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오늘의 시장과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주요 이론을 추렸다. 이를 통해 아마존·우버·에어비앤비 같은 전자상거래 및 플랫폼 비즈니스의 등장, 입학생의 학교 배정, 광대역 통신망 매각 등에 어떤 경제 이론들이 스며들어 있는지 들려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이용 약관을 간단명료하게 기술하는 설명서”라는 표현처럼 책은 일상의 사례와 비유를 동원해 어려운 경제학 이론을 쉽게 풀어낸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경매이론’을 설명하는 장에선 일본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미국 메이저리그 이적에 얽힌 이야기로 시작한다. 프로야구 ‘포스팅 시스템’을 실마리로 역사 속 우표 경매를 거쳐 ‘경매이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경제학자 윌리엄 비크리의 이야기로 연결시킨다. 인터넷 등장 이후 경매 사업으로 시작한 이베이의 등장, 전자상거래에서 경매 형식이 쇠퇴한 이유에 대해서도 곁들인다.

댄스파티에서 남녀의 짝짓기 방식을 연구한 데서 시작된 논문이 신입생의 학교 배정 등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대한 경제학의 고민으로 넘어가는 과정도 다룬다. 시장이 작동하지 않을 것 같은 푸드뱅크 사업에서조차 기부 식품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시장이 제몫을 다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나아가 신장 이식에서 공여자와 환자가 보다 원활하게 만날 수 있는 모형에 대한 경제학의 논의 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

책은 문제 해결의 틀로 시장을 다루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다. 첫 장에서 포로수용소 사례로 시장의 효능을 설명한 후 마지막 장에선 그 한계를 짚으며 질문을 남긴다. “시장이 더 효율적인 사회를 창출하는 역할을 정말 잘 수행하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를 만들뿐 아니라, 삶을 공동체 게임으로 보는가 아니면 월스트리트식 경쟁으로 보는가 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더 효율적인 세상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큰 대가를 기꺼이 치르고자 하는가?”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