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 뿌린 재난지원금, 코로나 직격탄 업종엔 효과 미미했다

입력 2020-12-24 04:01
‘수도권 5인 이상 모임금지’ 조치가 시행된 23일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에서 주인이 손님이 없어 텅 비어 있는 식탁의 의자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다. 최현규 기자

사람들이 최대 15조원의 1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쓴 후 이를 계기로 더 소비한 돈이 4조원가량 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추가 소비는 유발했지만 정작 코로나로 가장 힘든 업종인 음식점과 같은 대면 업종은 수혜가 크지 않아 재난지원금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차라리 충격을 받은 업종에 직접 돈을 꽂아주는 것이 낫다며 전 가구에 대한 보편지급보다 선별지급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국책연구기관인 KDI는 23일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는 행정안전부가 연구를 용역한 것으로 재난지원금에 대한 첫 공식 보고서다. KDI는 1차 재난지원금 최대 19조9000억원(정부 14조원+지방자치단체별 추가) 중 현금·상품권 지급을 제외한 15조3000억원의 카드 포인트에 대한 소비 증대 효과를 계산했다.


효과는 투입 예산 대비 26.2~36.1%였다. 소비 증대 효과는 재난지원금을 소진한 뒤 소비심리가 살아나 추가로 돈을 더 쓴 것을 뜻한다. 재난지원금을 사용 가능한 곳에서 약 4조원을 추가 소비했다. 개인으로 보면 당초 100만원 소비를 계획했던 사람이 재난지원금(100만원)으로 대신 돈을 쓴 후 남아 있는 돈(100만원)은 30만원을 추가 소비하고, 70만원은 저축 등으로 남겨뒀다는 얘기다.

재난지원금 목적이 소비 진작인 만큼 약 30% 효과는 달성했다. 정부 지출 중 현금성 지원인 이전지출 승수가 원래 크지 않다는 점에서 평균 또는 다소 높은 효과를 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다만 코로나19 타격을 심하게 입은 업종이 더 많은 혜택을 보게 한다는 재난지원금의 목표는 빗나갔다. 코로나19 타격이 가장 큰 업종은 대면 서비스업이다. 그러나 재난지원금 매출액 증대 효과는 (준)내구재(10.8% 포인트), 필수재(8.0% 포인트), 대면서비스업(3.6% 포인트), 음식업(3.0% 포인트) 순이었다. 상위 5개 업종은 세탁소 안경점 헬스장 패션·잡화 가구이고, 하위 5개 업종은 목욕탕 여행 편의점 학원 베이커리다.

재난지원금으로 식료품 구입, 외식 등이 늘었다는 소식이 많았지만, 이는 원래 계획했던 소비를 지원금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음식점, 커피숍, 여행 등은 방역 때문에 돈이 있어도 잘 가지 못했다.

KDI는 “피해가 큰 대면 서비스업에서는 효과가 미미했으며, 감염 위험이 있는데 해당 업종에 대한 소비 활성화 정책은 방역 정책과 상충할 수도 있다”며 “피해 업종 종사자에 대한 직접적인 소득 지원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1차 재난지원금은 가구 수가 많은 고소득층이 유리했는데, 이들이 돈을 더 받은 만큼 소비를 늘리지도 않았다며 2차 재난지원금과 비슷한 선별 지급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KDI는 “고소득 가구일수록 카드 소비를 크게 줄여 감염 위험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언급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