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정리하는 키워드를 꼽아보면 코로나19를 첫머리에, 부동산 문제를 다섯 손가락 안에 넣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전국이 들끓었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 때문에 거주 공간으로서의 집에도 새삼 주목하게 됐다. 유현준(51)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를 만나 정부의 주거 정책에 대한 의견과 코로나19로 달라질 건축문화, 도시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중 한 명인 유 교수는 하버드와 MIT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특유의 융합적 지식을 바탕으로 저술과 방송, 강연을 통해 건축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가 현 정부의 주택 정책 원칙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부동산 정책은 예를 들어 신도시를 만든다는 결정을 내리면 몇 천억, 몇 조를 쓰게 되고 이후 100년 가까이 영향을 미치거든요. 진보든 보수든 정권을 잡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되는데 부동산 정책 의사결정까지 정치적인 이유에서 이뤄지는 것 같으니 문제예요.”
-공공임대주택 확대 정책에 대해 ‘정부가 지주가 되고 국민들은 소작농 되라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칼럼을 쓰셨는데요.
“임대주택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집을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겐 임대주택이 필요하죠. 하지만 중산층을 대상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건 더 많은 국민들이 자산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니라 정부가 임대주택을 통해 부동산 자산을 독점하는 권력을 가지겠다는 거예요. 그런 정책에 기생하는 대규모 자본가들도 있어요. 건물을 새로 짓거나 통째로 리모델링해서 월 200만~300만원을 받는 월세 비즈니스가 각광받고 있어요. 사람들이 집을 사는 걸 포기하고 월세로 돌아서는 순간 시스템의 소작농이 되는 거고, 정부라는 지주와 대자본 지주 둘만 남게 되는 거죠.”
-극단적인 결론 아닌가요.
“1970년대 대한민국은 아파트를 지어서 허공에 공간을 만들어냈고, 그 공간을 중산층들이 사서 자산을 갖게 되면서 사회가 안정됐어요. 그런데 90년대 들어와 더 이상 고층화된 건물을 짓기도 어려워지고, 재건축·재개발이 막히면서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 자신의 공간을 갖기 시작했어요. 인터넷 가상공간을 통해 네이버나 카카오, 넥슨 같은 회사들이 새로운 부를 창출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정부의 역할은 끊임없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줘야 하는 겁니다. 공간을 만들어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제공하면 그게 그들이 부를 축적하고 계층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 역할을 안 한다는 건 어찌 보면 사회계층의 고착화를 하겠다는 거죠.”
-서울의 1인 가구 청년 10명 중 4명이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살고 있다는 통계도 있는데,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 정책은 방향이 맞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게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거라고 봐요. 임대주택에 들어가면 10년 후에 나와야 되잖아요. 그때는 집값이 더 올라 있을 거고, 집을 살 수가 없어요. 성실하게 적극적으로 갚을 수 있는 청년들에게는 대출을 80%까지 받아 집을 살 수 있게 금융 시스템이 보완됐으면 해요. 또 1, 2인 청년 가구용 15평짜리 원 베드룸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용적률도 높이고, 블록 단위로 통폐합을 해서 소규모로 재건축을 하는 방법도 있어요. 정책을 만들고 시장이 선도해나갈 수 있게 인센티브를 주면 해결될 수 있어요. 그럼 청년들도 집을 사서 자산을 모을 수 있고요.”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상황은 개선돼야 할 텐데요. 행정수도 이전이나 혁신도시 같은 국토 균형 발전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가요.
“혁신도시는 기존에 있던 구도심까지 슬럼화시켰어요. 차라리 구도심으로 가서 완전히 다른 도시를 만들었어야 돼요. 구도심은 50, 60년대 도로망 같은 옛날 흔적들이 남아 있고 거대한 토목공사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부분이 덜하잖아요. 그럼 거기에 유니크한 그 지역만의 도시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요. 신도시를 만드는 건 어마어마한 낭비예요. 몇 조를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구도심의 인프라가 슬럼화되고 문화적 자산이나 공동체가 와해되는 게 더 큰 손실인 거죠. 지방 균형 발전의 답은 다양성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어요. 서울이 맨해튼 같으면 세종시는 샌프란시스코처럼 돼야 되는데, 지방 신도시들도 서울과 똑같이 만들어졌으니 오리지널인 서울을 선호하게 되는 거죠.”
-그럼 주택 정책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사람들이 다 자기에게 맞는 집을 소유할 수 있게끔 하는 쪽으로 가야죠. 더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 더 좋은 동네를 만들고, 더 벌고 싶어 하는 건설사를 이용해 더 좋은 도시를 만들면 되는 거고요.”
-코로나19 얘기를 해볼까요. 감염학자나 생태학자들은 도시화 때문에 코로나가 빠른 속도로 퍼졌다고 하는데 교수님은 우리가 아파트에 모여 살아서 택배 효율이 높아져 자가격리가 가능했고, 그래서 초기 방역에 성공했다고 하셨어요.
“인류 문명의 역사를 보면 최초의 도시가 기원전 3500년 수메르 문명의 우르에서 인구 5000명으로 시작됐어요. 이후 지난 5000년 동안 장티푸스, 콜레라, 흑사병 같은 온갖 전염병이 많았죠. 그런데 도시는 지금 인구 1600만명의 뉴욕까지 만들어졌어요. 전염병이 생기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를 계속하면서 우상향으로 도시의 규모가 계속 커져왔어요. 단기적으로 보면 도시가 해체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위험하다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또 도시로 모여들 겁니다. 도시에 경제적인 기회가 많기 때문이죠.”
-그럼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아져 다시 전염병에 취약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전염병에 강한 도시 공간 구조를 만드는 데 답이 있다고 봐요. 얼마 전 유발 하라리 교수와 질문하고 답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도 제 의견에 동의를 하셨어요. 시스템이 정교화되면서 도시가 오히려 안전해지고, 앞으로 더 그렇게 될 것이며, 전 지구적인 팬데믹은 코로나19가 마지막일 수 있다고요.”
-코로나25, 코로나28처럼 잇달아 바이러스가 창궐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코로나와 비슷한 상황이 내년에 또 터진다면 바로 봉쇄하고 추적해 훨씬 더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거예요. 고무적인 건 10년 걸리던 백신이 1년 만에 나왔잖아요. 서울대 의대 교수님께 들었는데 이번에 백신을 만드는 프로세스가 기존과 달랐다는 거예요. 수학자들이 참여해 모델을 만들고 알고리즘을 예측해 경우의 수를 줄여나가면서 빠르게 개발됐다는 거죠. 바이오에 수학이 합쳐지고 IT까지 가세해 개발 기간을 줄일 수 있는데 그렇게 해낼 수 있는 나라들은 생존할 테고, 못하는 나라들은 도태되겠죠. 건축학적으로는 프랑스 파리가 전염병을 계기로 지하 하수도 시스템을 갖췄듯 더 합리적으로 공간 구조를 만들어 만약의 사태에 돌입하면 이동하지 않고도 모든 경제·문화적 행동을 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거예요.”
-코로나19가 공간과 도시, 건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저는 주거와 상업시설, 오피스, 학교, 공연장을 지역별로 나누지 않고 믹스해 수직적으로 주상복합화되는 도시로 바뀌어야 된다고 봐요. 출퇴근에 서너 시간씩 걸리지 않도록요. 지금처럼 10층짜리 빌딩에 상가가 다 들어가 있는 건물보다 상업시설은 저층형으로 선형화돼야 할 거고요. 공원과 상가 아케이드가 평행하게 있는 도시를 만드는 걸 제가 강조하는데, 그게 제일 잘돼 있는 데가 경의선 숲길이에요. 경의선 숲길이 제가 생각하는 스마트 고밀화에 가까운 도시의 모습이에요.”
-최근에는 도심 지하로 자율주행 로봇이 다니는 택배 물류 터널을 만들고, 지상 도로는 공원으로 만들자고 주장하셨어요. 반향이 있나요.
“대한토목학회장님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서울의 주요 도로에 터널을 뚫으면 대략 30조원 정도 들어갈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정부에서 만들어야 되는 새로운 공간이라고 말하는 게 그런 거예요. 물류 터널을 뚫으면 자율주행 로봇을 만드는 회사도 생기고 그 터널을 이용해 서비스를 하는 벤처회사들이 생길 거라고 봐요. 정부가 인프라와 공간을 만들면 사람들이 그 공간을 이용해 일자리를 얻고 자산을 만들 수 있겠죠.”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집에 머무르게 되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는데요, 집안 공간을 개선할 아이디어를 주신다면요.
“저는 발코니 확장이 안 된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화분을 많이 놓아서 정원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어요. 코로나 블루에서 공간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조명이에요. 따뜻한 스탠드로 천장을 비추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두면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보일 거예요. 또 하나는 물건을 버리는 거죠. 똑같은 공간이라도 책 배열 순서를 어떻게 할지, 옷을 어떻게 구분할지, 내가 만들어 놓은 규칙으로 정리정돈을 하면 기쁨을 주는 공간이 됩니다. 저는 대대적으로 옷장 정리를 했습니다. 안 입는 옷들을 다 정리했는데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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