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다정한 안부를 묻다

입력 2020-12-26 04:05

“잘 지내시죠?” “건강 조심하세요.” 의례적으로 주고받았던 평범한 인사들이 요즘엔 진심 어린 안부로 느껴진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제적인 어려움과 건강을 염려해주는 ‘다정한 안부’로 들리기 때문이다. 마음이 힘들 땐 누군가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에 용기가 난다.

최근 광주시가 이벤트로 실시한 ‘올 한 해 가장 큰 힘이 되어준 한 마디’ 사연 공모에 가장 많이 접수된 말 역시 평범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예를 들면 무뚝뚝한 아버지가 어느 날 불쑥 다가와 해준 “네가 우리 집의 자랑이다”란 말과 “겁내지 마. 어두울 땐 네가 빛나면 돼”라는 친구의 말 한 마디에 용기를 냈다는 것이다. 또 취준생으로 방황할 때 같은 취준생 친구가 해 준 “꿈을 버리지 말자. 끝까지 도전하자”라는 말이 의지가 됐고 “가족을 위해 꾹 참고 열심히 일해줘서 너무 고마워”라는 아내의 말과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이 입금됐습니다”란 문자를 받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든 마음을 털어낼 수 있었다는 사연도 눈길을 끈다.

사람은 “우리 딸~ 밥 먹었어?”라는 엄마의 말 한 마디에 울컥하면서도 용기를 내는 작지만 아름다운 존재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나누는 안부 인사는 정다운 일이고 소중하다.

사도 바울 역시 ‘다정한 안부’를 나눴다. 그는 성도들과 동역자들에게 편지를 쓸 때 안부 인사로 마무리했다.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벧전 5:14) 그가 안부를 묻는 것은 결코 그들을 잊지 않고 기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다세대주택에서 일어난 모자의 비극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한 사회복지사의 ‘다정한 안부’가 시작점이었다. ‘방배동 모자 사건’은 지난 3일 재건축을 앞둔 방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발달장애인 최모씨의 어머니인 60대 김모씨가 숨진 지 약 반년 만에 발견된 사건이다.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가 버리는, 오히려 피해서 지나가는 청년 노숙인 최씨 앞에 놓인 종이엔 ‘우리 엄마는 5월 3일 돌아가셨어요. 도와주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메모는 최씨가 세상에 외치는 ‘거친 안부’였고 구조신호였다. 이걸 알아봐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정미경 사회복지사는 평소 동역해온 사당지구대 이성우 경위, 동작구청 김재영 주임과 함께 도왔고 세상에 알렸다. 평소 이들은 교회와 연계해 노숙인들의 안부를 묻고 돌봐온 동역자들이었다.

정미경 사회복지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교회가 교인으로 등록된 이들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 주변 지역 사회로 스며들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자립, 정착할 수 있도록 맡겨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작은 보살핌이 생명의 동아줄이 되기도 한다. 가난보다 참기 힘든 것은 외로움과 고독이라고 한다. 누군가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받고 힘을 낼 수 있다. 쌀이 떨어져도 쌀이 없다고 말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를 하며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들을 찾아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손길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지역 교회들이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를 좀 더 꼼꼼하게 도울 수 있을까. 지자체와 교회 돌봄 사역의 관계망을 구축해야 한다. 교회는 지역 주민센터로부터 정보를 수집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웃을 찾아가야 한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계층까지는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차상위계층 선정 조건을 아주 조금 넘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돈을 적게 벌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되는 이들은 결국 추운 겨울 벼랑 끝으로 몰린다. 특히 조손·한부모 가정 아이들의 희망이 돼 주어야 한다.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고아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아이들에게 좋은 이웃이 돼 주어야 한다.

“너도 이같이 하라”(눅 10:37)고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듯 교회가 원하는 방법과 예산이 아니라 주님과 우리의 이웃이 원하는 방식으로 섬기며 봉사해야 한다. “내 이웃이 누구이니이까”(눅 10:29)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계속 던져야 하는 것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성이기 때문이다. 한 해의 끝에서 이웃에게, 세상에게 ‘다정한 안부’를 전해보자.

이지현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