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펜트업 효과

입력 2020-12-24 04:03

지난달 23일 ‘참좋은여행’사의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 회사가 ‘희망을 예약하세요’란 문구를 내걸고 해외여행 상품을 출시하자 예약자들이 대거 접속하면서 빚어졌다. 2021년 해외여행 상품 398개 예약에 1만명 이상이 몰렸다.

여행사가 정한 예약금은 평소 예약금의 10분의 1 수준인 1만원. 일본·홍콩은 내년 3월, 동남아는 내년 4월, 유럽·미주는 내년 6월 이후 출발하는 패키지 상품이다. 코로나 상황을 감안해 몇 가지 조건도 붙었다. 출발 예정일까지 코로나로 여행이 불가능하면 예약금 전액 환불, 여행이 가능해졌을 때에는 항공권 등 여행 경비가 상승해도 현재 요금을 받고, 하락 땐 인하된 요금 적용 등을 약속했다. 처음 1주일간 예약을 확정한 인원은 총 8000여명이다. 하루 평균 1000건가량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 대비 60% 늘었다는 것이 여행사 측의 설명이다.

국내 여행업계 선두인 하나투어도 지난 15일 몰디브 터키 칸쿤 두바이 스위스를 여행하는 ‘지금 바로 떠나는 해외여행’ 상품을 출시했다. 이들 5개 지역은 현지 자가격리가 없는 곳이다. 국내 귀국 시 2주 자가격리는 해야 하지만 여행 희망자들에게는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하나투어가 9개월 만에 내놓은 이 상품은 내년 1월부터 1명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9∼14일짜리 장기체류형 상품이다. 항공기 비즈니스석과 올인클루시브 리조트 등을 이용한다. 코로나19 속 안전한 해외여행 상품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자 안전 기준이 강화된 해외여행 상품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하나투어는 내년 5월 이후 출발하는 해외여행 상품도 내놨다. ‘2021년’에 맞춰 예약금을 2021원으로 정했다. ‘미리 준비하는 해외여행’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상품은 내년에 해외여행이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마련됐다. 위생과 안전 수칙을 준수하는 호텔, 레스토랑, 관광지 등이 엄선됐다. 여행자보험 해외 치료비를 2000만원으로 높였고, 24시간 해외긴급지원 서비스도 제공한다. 코로나19로 여행 취소 시 100% 환불해준다.

여행업계로선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 내놓은 고육지책이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95% 이상 급감했다. 1000여개에 달하는 여행사가 쉬거나 문을 닫았다. 하나투어는 물론 모두투어, 노랑풍선 등 대형 여행사도 지난 3월부터 필수인력을 제외하고 무급휴직 중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여전히 불안한데도 여행상품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은 코로나19에 발 묶였던 여행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른바 ‘펜트업(pent-up) 효과’다. ‘보복 소비(revenge spending)’라고도 한다. 외부 요인으로 억눌렸던 수요가 그 요인이 해소되면서 급속도로 분출하는 것이다. 코로나 종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여행업이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적은 금액으로 고객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사고, 여행사는 회사를 살릴 수 있어 윈윈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 문화·관광 전망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종식 이후 가장 원하는 여가활동으로 여행이 꼽혔다. 또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개발 이후 내국인의 70.2%, 외국인의 82.0%가 ‘해외여행을 떠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여행업계나 여행을 희망하는 사람이 지금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코로나19 종식 이후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여행의 ‘코로나 터널’에도 하루빨리 희망의 빛이 비치기를 기대한다.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