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K에 대한 환상과 집착을 버리자

입력 2020-12-24 04:01

코로나19 백신 확보와 접종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코로나19 확산세와 방역 단계 상승으로 국민의 불안과 불편이 늘어나는 반면 언제 백신을 맞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의 속은 타들어간다.

백신 계약 지연에 대한 변명들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 확산세가 미약해서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K방역의 성공 때문에 백신 필요성을 크게 못 느꼈다는 것이다. 빠르고 철저한 방역으로 코로나19 1차 확산에 외국보다 성공적으로 대처했다는 평가가 나오자 K방역이란 단어가 정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등장해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사례를 모형화하고 해외 전파까지 하겠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 중에는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과거 사스와 신종플루, 메르스 경험을 통한 학습, 특히 메르스 당시 국제 방역기구의 권고로 대응 매뉴얼과 시스템을 정비했던 것이 우리의 코로나19 대응에 큰 도움이 됐다. 방역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외국과 달리 기본을 열심히 지킨 우리 사례에 특별히 K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의구심이 든 것이다.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고 죄인시하는 분위기가 개인 자유와 인권 침해 소지가 있어 일반화시킬 수 없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하지만 성공 사례 홍보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해외 공보관에서 큰 비용을 들인 홍보도 계속되고 있다. “K방역이 세계의 표준”이라고까지 추켜세웠던 대통령은 코로나19의 급격한 재확산 국면을 맞아 K방역의 성패를 걸고 총력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과연 정부에 중요한 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인지 아니면 K방역의 성공인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물론 K방역의 성공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의문이 제기된다. 현재 우리의 문제는 K방역에 소홀해진 것인가 아니면 K방역에 집착하는 것인가.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처럼 많은 인원이 동원되고 국민 삶에 부담을 주는 방역은 백신이 보급돼 국민의 면역이 생길 때까지 임시방편임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우리가 K방역의 성과에만 집착한다면 결국 백신은 보지 않고 방역만 보게 될 수 있다. 백신 확보에 늦어버린 우리의 현재가 정부의 해명대로 외국보다 급할 게 없는 상황에서 백신 안전성 확인을 위해 신중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K방역에 매몰돼 백신 확보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인지 의문이다.

2000년대 들어 우리 주변에서는 K팝, K푸드, K뷰티, K스포츠 등 수많은 K가 붙은 단어가 생겨났다. 대부분은 글로벌 문화에 대한 한국의 로컬 도전이었고, 덕분에 한국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다. K팝의 선두라고 하는 BTS는 한국어 가사 노래로 정상에 올랐지만 이들의 성공은 한국적 정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보편 정서와 감각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것은 다양성 속에서 어울릴 때 더 빛난다. 우리가 최고요 표준이라는 생각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1990년대 일본형 시스템의 환상을 추구했던 일본의 실패가 잘 보여준다.

문화가 아닌 분야에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 최근 K방역 외에 K경제, K외교라는 말도 자주 접한다. 애초에 추진했던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는 크지 못했지만 코로나19 방역 성과 덕분에 경제 성적표가 좋아지자 K경제라는 말은 더욱 자주 들린다. 하지만 여전히 K경제가 무엇이 다르고 그 핵심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K외교도 마찬가지다. 화합과 협력이 핵심인 외교에서 우리만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의문이 든다. 경제, 외교, 방역 등 전문 원칙이 있는 분야에서 남들과 달리 우리만의 방식을 추진하겠다는 K 중심의 생각은 원칙에서 벗어나 전체를 그르칠 우려가 있다.

2000년대 한국이 여러 분야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코로나 재확산이 위협하지만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덜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은 코로나19에서 벗어나는 것이지 K방역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 주장대로 쥐를 잘 잡는다면 검은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우리 것이 좋고 남들과 다르다는 명분과 자부심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