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코로나19 창궐로 기성 프로스포츠 리그들이 시즌 중단 및 조기 종료를 선언하는 등 전례 없는 풍파를 겪었다. e스포츠도 코로나19의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비대면으로도 진행할 수 있다는 e스포츠만의 특장점을 앞세워 다른 스포츠보다 원활하게 리그를 운영, 완주하는 등 종목의 성장 가능성을 증명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e스포츠 종목 ‘리그 오브 레전드(LoL)’는 지난 10월31일 중국 상하이 푸둥 스타디움에서 국제대회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의 한 달 일정을 마무리했다. 주최사 라이엇 게임즈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자 줄곧 대회 개최 여부를 고심해오다가 결국 규모를 축소해 열기로 지난 8월 결정했다.
e스포츠는 양 팀 선수 간 신체접촉이 없다시피 해 상대적으로 방역에 유리하다. 라이엇 게임즈는 전 세계에서 집결한 선수들을 2주간 자가 격리한 뒤 대회에 참가하게 했다. 4강전까지는 한 스튜디오에서 무관중으로 대회를 운영하며 참가 인원의 이동 동선을 최소화했다. 결승전만 대형 축구 경기장에서 진행하고 6000여명의 관중 입장을 허용했다.
국산 게임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의 e스포츠 대회를 운영하는 펍지주식회사 역시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해 e스포츠 운영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이들은 올해 개최를 예정했던 4회의 대규모 국제대회를 전부 취소했다. 그 대신 한국·일본·대만·중국 등 인접한 지역의 프로게임단끼리 온라인으로 대결하는 방식의 대회를 열었다.
올해 국내 e스포츠 시장은 LoL의 국내 e스포츠 대회인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의 프랜차이즈 제도 도입 선언으로 분기점을 맞았다. LCK를 주최하는 라이엇 게임즈는 내년부터 대회의 승강제도를 폐지하고, 프랜차이즈 가입팀들과 리그 수익을 분배하며, 선수 최저연봉을 기존 2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3배 가까이 올리는 등 시스템에 변화를 주겠다고 밝혔다.
SK텔레콤과 KT, 한화생명 등 예전부터 LCK에 참여해왔던 9개 기업과 스포츠 마케팅사 ‘브리온’이 LCK 프랜차이즈에 가입했다. 여기에 기아차, 농심 등의 그룹도 기존 팀들과 스폰서십을 맺으면서 e스포츠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업들은 e스포츠가 MZ 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제도 도입으로 LCK의 시장 규모가 급격히 팽창했다. 라이엇 게임즈가 책정한 프랜차이즈 가입비는 100억원(5년 분할 납부) 수준이다. 프로게임단의 덩치가 커지면서 스타급 선수들은 올해 이적시장에서 10억원이 넘는 고액 연봉을 받기로 약속하고 새로운 팀에 입단했다.
프랜차이즈 제도 도입이 긍정적인 효과만 불러온 것은 아니다. 2부 리그의 폐지로 수십 명의 중견급 선수들이 직장을 잃었다. 2부 리그 강등의 리스크가 사라지자 팀들은 미래에 집중하기로 했다. 당장 팀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는 베테랑 선수 영입 대신 유망주 육성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해외 진출 사례도 예년보다 줄었다.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여러 후원사의 지갑도 닫혔다. LoL이나 배틀그라운드 등 인기 게임 종목으로 진행하지 않는 e스포츠 대회는 규모가 상당 부분 축소됐다. 이런 가운데 라이엇 게임즈는 이달 초 신작 게임 ‘발로란트’의 첫 e스포츠 대회 ‘퍼스트 스트라이크’를 개최했다. 서울 종로구의 e스포츠 경기장 ‘LCK 아레나’에서 무관중으로 열린 이 대회의 우승은 국내 최강팀으로 꼽히는 ‘비전 스트라이크’가 차지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