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개발국 우선 접종 불가피”… ‘자체개발’ 강조하다 실기했나

입력 2020-12-23 04:02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5부요인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코로나19 백신 확보 논란과 관련해 “우리도 특별히 늦지 않게 국민들께 백신 접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고, 또 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5부요인 초청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하고 “백신을 생산한 나라에서 많은 재정 지원과 행정 지원을 해서 백신을 개발했기 때문에 그쪽 나라에서 먼저 접종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 등 주요국들이 백신 접종을 시작한 것과 달리 한국은 백신 확보가 지연됐다는 비판을 우회 반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도 이례적으로 문 대통령의 내부 회의 발언을 공개하며 “백신의 정치화를 중단해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전 세계가 백신 확보 경쟁 중인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백신 메시지가 ‘자체 개발’과 ‘공공재’ 측면에만 맞춰져 있어 백신 확보 타이밍이 늦춰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선진국들은 백신 접종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지난주부터 공식 접종을 시작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도 21일 화이자 백신을 접종했다. 영국은 지난 2일 세계에서 처음으로 화이자 백신의 긴급사용을 승인했고, 유럽연합(EU) 27개국도 조만간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할 예정이다. 백신 개발국이 아닌 싱가포르 뉴질랜드 카타르 이스라엘 등도 화이자 백신을 확보했다.

반면 한국은 화이자, 모더나 백신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만 확보한 상태다. 정부는 접종 시점을 내년 1분기로 전망하고 있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국내에선 백신의 ‘자체 개발’을, 국제 사회를 향해선 ‘백신은 공공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청와대가 처음 백신을 논의한 건 지난 2월 방역 전문가들과의 간담회였는데 청와대는 “치료제, 백신 개발 등 장기 대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백신 개발 논의 자체가 늦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구 제약회사들이 백신 개발에 앞서 나가는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은 ‘자체 개발’에 초점을 맞춘 메시지를 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15일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현장 간담회에서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안전성과 효능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감염병 대응 역량을 높이고 백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개발 성공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다자 정상회의에서 백신을 두고 ‘공공재’ ‘공정한 접근’ 등의 표현을 쓰며 국제 사회의 협력을 강조했다. 이런 ‘당위론’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각국에서 ‘백신 민족주의’ 바람이 일고 있는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이상론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백신 확보 상황을 실시간 보고받고 채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보도를 계기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마치 백신 확보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처럼 과장·왜곡하면서 국민의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며 대통령의 참모 회의 비공개 발언 등을 공개했다.

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4월부터 ‘백신 행보’를 했으며, 특히 내부 회의에서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9월 15일)” “과하다고 할 정도로 물량을 확보하라. 대강대강 생각하지 마라(지난달 30일)” 등 수차례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추가 물량 확보와 접종 시기 단축을 위해서 모든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