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어머니 잃었지만 교회 형제를 얻었다

입력 2020-12-23 03:01
사당지구대 경위인 이성우 집사가 지난 18일 서울 동작구 송학대교회에서 ‘방배동 모자 사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집사는 2016년부터 노숙인을 섬기는 사역을 해왔다. 신석현 인턴기자

“싱크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방 전체에서 냉기가 올라왔어요. 한쪽엔 미납요금 고지서가 잔뜩 붙어있었죠. 그 건너편엔 무언가를 이불로 덮은 후 비닐과 테이프로 꽁꽁 싸맨 게 보였어요. 반년 전 세상을 떠난 최모(36)씨의 어머니였어요. 냄새도 나지 않을 정도로 꽁꽁 싸맸더라고요. 최씨는 ‘벌레가 나와 그렇게 했다’면서도 ‘신고가 뭐예요’라고 물을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어요.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 싶어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서울 동작구 송학대교회(박병주 목사)에서 지난 18일 만난 사당지구대 경위 이성우(52) 집사는 ‘방배동 모자 사건’의 아들 최씨 집에 가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방배동 모자 사건은 지난 3일 재건축을 앞둔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최씨의 어머니인 60대 김모씨가 숨진 지 약 반년 만에 발견된 사건이다. 발달장애가 있는 최씨는 어머니가 숨진 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툴게 적은 도와달라는 내용의 쪽지를 들고 사당역과 이수역 부근에서 노숙했다.

이 집사는 동역자인 동작구청 주임 김재영(52) 집사와 함께 지난 3일 최씨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 김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 집사는 평소 알고 지내던 정미경 사회복지사에게 지난달 6일 최씨가 노숙한다는 소식을 듣곤 쉬는 날마다 최씨를 찾아다녔다(국민일보 12월 22일자 33면 참조). 혹여나 범죄 피해자가 되진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다. 최씨는 현재 김 집사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이 집사와 교회의 도움으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이 집사는 “최씨는 요즘 4~5공기씩 밥을 먹고 잠을 12시간씩 자며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을 조금씩 치유하고 있다”며 “서초구청이 연결해준 정신과 병원에 다니고 교회에도 등록해 예배도 함께 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집사는 2016년부터 노숙인을 섬기는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노숙인을 ‘형제’라 불렀다. 현재 그가 돌보는 형제는 25명이다. 이 집사는 이들에게 쉴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하고 교회로 데려와 예배드리며 회복과 자립을 돕고 있다. 처음 1년간은 ‘형제’들이 머무는 고시원에서 함께 지내며 그들을 돌봤다. 송학대교회와 동역하기 전까지 1년여 동안은 월급 대부분을 형제들을 위해 썼다.

그는 이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 이 집사는 “2016년 10월 처음 노숙인 3명을 데리고 교회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네가 하는 일을 다 보고 있단다’라는 말씀을 주셨다. 주님이 원하시는 이 길을 가며 어떻게든 형제들을 챙기겠다고 다짐했다”며 “형제들 못지않게 어려웠던 저의 어린 시절도 결국 형제들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하나님이 훈련시키신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송학대교회에서 이성우 집사(뒷줄 왼쪽 세 번째)와 교회 관계자들, 노숙인들이 함께 예배드린 후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교회는 2017년 노숙인들을 위한 ‘겨자씨 교구’를 만들어 이 집사의 사역을 지원하고 있다. 송학대교회 제공

여러 교회의 문을 두드리며 동역할 교회를 찾던 이 집사의 손을 잡아 준 건 송학대교회였다. 교회는 이들을 위해 ‘겨자씨 교구’를 만들어 다방면으로 지원 중이다. 박병주 목사가 설교에서 이들의 소식을 전하자 한 집사가 쉼터를 제공했고, 두 명의 권사가 이들을 전담해 매주 반찬을 전달하는 등 식사를 책임진다. 코로나19 이전까진 매주 토요일 교회에 모여 수준에 맞는 예배와 성경공부도 따로 진행했다. 교회는 사역에 필요한 차량과 예산도 지원한다. 이 집사와 가족에겐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교회 사택을 내줬다.

박 목사는 “교회는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징검다리가 돼줘야 한다”며 “이 집사와 함께 구제를 넘어 최씨를 비롯한 겨자씨 형제들이 한 명의 시민으로 건강하게 설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집사의 소망은 형제들이 자립해 자신과 같은 약자에게 도움을 건네며 살아가는 것이다. 일부 형제는 이 집사가 일할 때 대신 최씨를 찾아다녔다. 최근에는 노숙인들에게 도시락을 전하는 봉사도 시작했다.

이 집사는 “노숙인 형제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잘 전하고 그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성령님이 이끄시는 삶을 살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번져나가는 작은 불씨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방배동 모자 비극 어떻게 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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