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디지털금융 발전이 속도를 더하면서 중앙은행과 일반은행들이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했다. 중앙은행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등장에다 핀테크에 밀려 고유의 결제 기능과 독립성마저 훼손당할 처지에 놓였다. 시중은행들은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에 치이고, 플랫폼으로 무장한 빅테크 기업에 종속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독립성 박탈위기 처한 중앙은행
중앙은행은 본원통화를 창출하는 은행의 은행이다. 또 공개시장 조작을 통해 시중의 유동성을 조절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해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신용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통화를 발행하고 국공채를 사들여 유동성 공급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연준과 한국은행이 이번에 SPV(특수목적기구)를 설립해 회사채 매입에 나선 것은 기업의 신용경색을 막기위한 차원이다. 하지만 미 연준은 재무부와 의회로부터 심각한 간섭을 받고 있다. 미 재무부는 코로나 이후 도입했던 주요 채권 매입기구 연장을 불허한다고 통보한데 이어 공화당 일부 의원이 비상대출 프로그램 재도입을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심심찮게 불거지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논란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금융위원회가 금융결제원에 대한 감독권을 행사하는 내용의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의원 입법 형식으로 추진중인 개정안은 빅테크·핀테크 업체 간 거래뿐만 아니라 업체 내부거래까지 금융결제원의 지급결제시스템에서 처리토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은은 핀테크 등의 내부 거래를 금융결제원이 새로 관리토록 한 뒤 금융위 감독을 결제기능 전반으로 확대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핀테크 등 디지털 금융발전에 따라 중앙은행의 고유 결제기능도 변해야 하는 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이 최근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회장의 앤트그룹 기업공개(IPO)를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도 핀테크 성장세에 위협을 느낀 때문으로 지적된다.
아울러 국회는 물가와 금융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내용의 한국은행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달러의 무한 발권력을 가진 미 연준을 벤치마킹 하려는 차원이지만 제한된 한은의 발권력에다 경직된 한국의 고용시장을 고려하면 자칫 통화정책을 바탕으로 한 중앙은행 독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
일반은행은 동네북 전락
한국은행은 당초 CBDC 도입에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관련 태스크포스(TF) 등 연구팀을 다시 꾸려 재검토에 나섰다. 빅테크 기업들의 새로운 결제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점점 영향력이 커져가고 있는 암호화폐의 존재감 때문이다. CBDC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중앙은행은 중국 인민은행이다. 카지노의 도시 마카오에 시범 도입할 예정인데 결제 관련 정보가 낱낱이 포착되기 때문에 불법 자금세탁은 발을 붙이지 못한다.
그런데 이 CBDC는 양날의 칼이다. 일반은행들에는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CBDC를 일반인에게 직접 유통할 경우 시중은행 고유의 계좌개설을 통한 자금중개 기능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토머스 우에르타스 독일 괴테대학 교수는 2018년 금융전망저널에 발표한 ‘은행은 여전히 특별한가’ 보고서에서 CBDC 발행시 중앙은행이 거래계좌를 발행하고 유동성을 제공하게 돼 은행의 특별성이 최소화되거나 사라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저금리 추세 장기화에다 핀테크와 빅테크 기업 등 새로운 경쟁자 등장으로 은행들은 경영악화를 넘어 생존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정부가 4차산업 혁명 기치아래 오픈뱅킹, 데이터 3법에 이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통해 종합결제사업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중앙은행을 통한 일반은행의 최종 결제기능이 핀테크·빅테크 기업에도 허용될 가능성이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중앙은행과 일반은행은 공동의 적에 맞서야 하는 오월동주 신세가 된 셈이다.
세계적으로는 거대 플랫폼과 막강한 고객 정보력을 무기로 한 미국의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와 중국의 BATH(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등 빅테크 기업들이 금융서비스 영역을 넓히며 은행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형국이다. 국내에서는 네이버, 카카오 등이 간편결제 및 송금서비스, 예·적금, 대출, 펀드 보험 등으로 금융영업을 문어발식으로 확대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은행이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빅테크의 하위 기능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은행 자체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위기 때마다 은행 예금이 정부의 쌈짓돈 노릇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은행들은 대출 상환유예나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 경영자금 지원 등 정부 정책에 필요한 실탄 공급처로 전락했다. 그러면서 금융감독당국은 은행들에 연말 배당축소 등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예금보험 혜택 등 공적지원을 받는 예금취급 기능이 바로 은행에 피할 수 없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