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영국, 미국을 필두로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물밑에선 백신을 확보하기 위한 각국의 쟁탈전이 치열하다. 어느 나라가 어떤 백신을 어느 만큼 계약했는지 집계하는 블룸버그통신의 ‘백신 트래커’를 보면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격차가 두드러진다.
계약 물량 인도·EU·미국 순
블룸버그통신 백신 트래커에 따르면 지난 21일(현지시간) 기준 계약이 체결된 코로나19 백신 물량은 세계적으로 82억회분에 달한다. 화이자와 모더나 등 주요 백신이 2회 접종을 요구한다는 점을 고려해도 최소 41억명에 백신을 맞힐 수 있다.
다만 블룸버그 집계에는 백신 제조사와 제조 물량, 수령 국가 등이 투명하게 밝혀진 경우만 포함됐다. 백신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거나 핵심 정보가 비공개된 계약들은 배제됐다.
이날 기준 가장 많은 백신을 확보한 국가는 인도다. 인도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가 공동으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10억회분에 더해 노바백스 백신 10억회분과 러시아 가말레야 백신 2억회분을 확보했다. 총 22억회분이라는 막대한 물량을 확보했지만 인도의 인구(13억9000만여명)를 고려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인도의 뒤를 이은 건 유럽연합(EU)이다. EU는 인도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백신을 확보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프랑스 사노피 등 회원국이 제조한 백신을 각 3억회분 계약했다. 독일 바이오회사 큐어백의 백신도 2억2500만회분 구매했다. 존슨앤드존슨(J&J)(2억회분)과 화이자(2억회분), 모더나(8000만회분) 등 미국 제약사들의 백신도 계약했다. EU가 확보한 전체 물량을 종합하면 13억500만회분에 달한다.
인구 3억3000만명의 미국은 9억1000만회분의 백신 계약을 체결했다.
아스트라제네카(3억회분)와 모더나(2억회분), 노바백스(1억1000만회분) 등이 주요 물량이다. J&J과 화이자, 사노피 백신도 각 1억회분 공급받을 예정이다. 미국 정부는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승인을 받아낸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신속하게 배포해 내년 3월까지 1억명에게 접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이 3억회분을 확보하며 선두에 섰다. 현재까지 아스트라제네카 2억회분과 복성제약 1억회분이 계약됐다. 복성제약은 독일 바이오엔테크로부터 백신을 공급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백신을 각 1억2000만회분 확보했고, 모더나 백신 5000만회분도 추가로 들여올 예정이다. 인구 전체에 접종하고도 수천만회분이 남을 물량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아스트라제네카·모더나·화이자 백신 6000만회분과 J&J 600만회분 등 총 6600만회분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추가 계약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인구의 60%가량밖에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상황이다.
10개국 인구수 이상 확보…빈곤국 ‘코백스’ 의존
코로나19 백신 계약은 부자 나라에 쏠려 있다. 블룸버그가 분석한 백신 계약 통계에 이름을 올린 21개 국가·지역·공동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선진국이다. 수년간의 개발 과정이 소요되는 일반 백신과 달리 코로나19 백신이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개발되기까지 선진국의 자금이 막대하게 투입된 만큼 그들에게 우선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미국의 백신 개발팀인 ‘초고속작전팀(Operation Warp Speed)’은 모더나 등 6개 이상의 백신 후보에 자금을 지원했다.
선진국들은 복수의 제약사들과 계약을 체결해 인구수 이상의 백신 물량을 확보했다. 캐나다의 경우 노바백스와 사노피, 모더나 등 7개사로부터 총 3억4200만회분의 백신을 구매하기로 했다. 이는 1억9000만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양으로 캐나다 인구 3800만명의 5배에 달한다.
NYT도 상위 소득 국가로 분류된 16개국 가운데 캐나다와 미국, 영국, EU, 호주, 칠레, 이스라엘, 뉴질랜드, 홍콩, 일본 등 10개국이 인구수 이상의 백신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대부분의 저개발국가는 백신 계약 통계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브라질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중국과 러시아산 백신으로 확보 물량의 60%를 채웠다. 멕시코도 확보한 2억1000만회분의 백신 가운데 절반가량이 중국과 러시아 백신이다. 예외적으로 남미 지역은 자체 예산이 아닌 멕시코의 억만장자인 카를로스 슬림이 지원한 자금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억5000만회분을 확보했다.
블룸버그는 그 외 백신 확보 능력이 부족한 수단, 에티오피아, 볼리비아 등 92개 빈곤국은 백신 공동구매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가 확보한 7억회분의 백신에 기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구 대비 비율로 따지면 14% 수준이다.
중·러는 자국 백신 접종… 안전성 의문 여전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백신으로 인구 대다수를 접종시킬 계획이다. 러시아는 보건부 산하 가말레야 연구소가 개발한 ‘스푸트니크 V’ 1억6000만회분을 접종한다는 방침이다. 중국도 국영 제약회사 시노팜과 시노백을 중심으로 접종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는 “중국 당국이 자국 제약사들과의 계약 물량 등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집계에서는 제외했다”면서도 “인구 대부분이 맞을 만큼은 자국 백신을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의학계는 중국·러시아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CNBC는 의학전문지 란셋을 인용해 “백신 개발의 정상적인 절차는 3차 임상시험 결과를 기다린 다음 긴급사용 승인 신청을 하는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 정부의 백신 접종 허가에 대해 “상식에 어긋나며 서양에서는 용납되지 않았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이들 백신이 정확한 임상 3상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검증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