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백신 격차’가 발생하면 코로나19 피해 업종과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격차가 벌어질수록 K방역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국내 기업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와 여행업계는 백신 확보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22일 “한시라도 빨리 여행 심리가 회복되는 게 중요한데 백신 접종 시점이 늦어질수록 (업체들의) 생존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항공 및 여행업의 특성상 다른 나라와 동등하거나 더 높은 방역 수준을 갖추는 게 중요한 데 앞으로는 백신 확보 여부가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등 백신을 먼저 접종한 나라들은 ‘트래블 버블(코로나19 방역 우수 국가 간 입국 절차 간소화 및 격리 제외 조치)’을 형성하는 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는 코로나19용 ‘디지털 백신 여권’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여권은 보건 당국이 승객의 코로나 백신 접종 및 음성 확인서를 발급하면 정부와 항공사가 이중으로 진위를 확인하는 식으로 운용될 예정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백신 접종이 완료된 나라끼리만 패스가 발급되고 우리나라는 접종이 완료될 때까지 빠질 수 있다”면서 “단, 여러 나라의 협조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현실화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는 중소기업들도 백신 확보에 향후 사업 성패가 달렸다고 보고 있다. 해외에 있는 공장에 주기적으로 인력을 보내 유지·보수를 해야 하는데 이미 이동 제한으로 공장 폐쇄 등 극단적인 상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은 “백신을 맞으면 출입국이 자유롭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다른 대안이 없으니 백신 확보가 간절하다”고 말했다.
백신 격차로 그동안 쌓아 올린 K방역에 대한 프리미엄이 사라져 관련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K방역 위상이 떨어지면 방역 관련 제품을 만들어 수출해왔던 중소기업들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백신 격차가 발생하더라도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이 당장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는 우세하다. 반도체, 철강, 조선업 등 주요 제조업은 수출 비중이 높으므로 백신 확보 여부가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은 수출 비중이 매우 높으므로 미국 등 다른 나라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경제 회복 속도가 빨라지면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백신 수급이 정부 계획보다 더 미뤄지는 등 차질이 발생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기업 신뢰도 하락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준엽 안규영 정진영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