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쯤이야”… 우리들의 영웅 원더우먼이 돌아왔다

입력 2020-12-23 04:07
23일 개봉한 영화 ‘원더우먼 1984’의 한 장면. 전작과 달리 1980년대 호화로운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원더우먼이 중요한 진실을 깨닫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원더우먼 1984’의 주제는 시작과 동시에 등장한다. 어린 다이애나는 백성 앞에서 최고의 용사를 가리는 아마존 레이스에 도전한다. 다이애나는 1등으로 들어오지만, 지름길로 왔다는 이유로 탈락한다. 투덜대는 다이애나에게 어머니가 건네는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진실보다 중요한 건 없다. 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을 때 영웅이 되는 거야.”

‘원더우먼 1984’가 23일 개봉했다. ‘원더우먼’(2017) 이후 3년 만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가득했던 전편과 달리 미국 시장 경제가 호황이던 1980년대 원더우먼의 활약을 그린다. 신작이 사라진 극장에 단비 같은 영화는 해외 32개 시장에서 개봉해 지난 주말 중국에서만 1880만 달러(약 210억원)를 벌어들였다.

‘원더우먼 1984’는 영웅의 탄생을 담은 전작보다 규모는 커졌고 주제의식은 깊어졌다. ‘영웅의 성숙’을 그린 이 영화에서 원더우먼은 ‘진실’을 깨닫고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난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는 진실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고고학자로 살아가던 원더우먼은 일상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한다. 과속 교통사고를 막고 무장 강도를 제압하기도 한다. 원더우먼은 그래도 공허하다. 전작의 연인 스티브 트레버(크리스 파인)가 곁에 없어서다.

박물관에 들어온 신비의 돌 ‘황수정’은 원더우먼의 삶에 파문을 일으킨다. 소원을 이뤄준다는 허무맹랑한 돌에 빈 소망이 실현되면서 죽은 연인 스티브가 되살아난다. 재회의 감격도 잠시 사건이 연달아 벌어진다. 자신을 석유 재벌이라고 주장하는 맥스 로드(패드로 파스칼)가 황수정으로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이 일어나고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황수정 탓에 초월적 존재인 원더우먼도 피를 흘린다. 해결 방법은 딱 한 가지. 소원을 포기하는 것이다. 원더우먼의 적수인 치타(크리스틴 위그)도 “원더우먼처럼 멋지고 강한” 인물이 되는 대신 인간성을 포기했다.

‘진실’의 의미가 선명해지는 건 이때쯤이다. 욕망이 난무하는 세상은 절망이고 내 노력으로 얻지 않은 것은 신기루다. 고로 편법에 기대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모든 이가 영웅이라는 메시지다. 경제 성장 욕망이 들끓던 1980년대 미국이라는 극 배경이 주제의식을 두드러지게 만든다. 부동산과 주식 광풍으로 바람 잘 날 없는 현재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원더우먼’ 시리즈의 백미는 역시 여성 서사다. 영화 도입부 아마존 경기에서 수만명의 여성들이 경기를 즐기는 모습은 이채로운 감상을 선사한다. 원더우먼과 치타는 여성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스펙터클을 키운 영화는 기존 수트에 더해 황금 아머(갑옷)가 새로 등장한다. 이집트의 카체이싱 장면, 치타와의 공중전·수중전, 대형 쇼핑몰 전투신 등 감탄을 내는 장면이 이어진다. 다만 전형적인 히어로물 공식을 답습하는 전개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원더우먼은 “힘들어도 우리의 세상은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할리우드발 히어로물의 이 보수적인 ‘현실 예찬론’은 바이러스로 신음하는 시민들에게 일상으로의 복귀를 향한 의지로 새롭게 읽힐 듯하다. DC 유니버스 마니아를 겨냥한 쿠키 영상이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의 등을 토닥여준다. 151분.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