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름은 ‘아름다운 광장’… 공산혁명 이후 체제 선전장으로

입력 2020-12-23 04:06
붉은광장은 폭 130m, 길이 695m의 대광장이다. 붉은광장 남쪽에는 성 바실리성당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그 너머에는 모스크바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성 바실리성당 옆에는 크렘린 망루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스파스카야 망루가 있다.

러시아의 역사는 모스크바 크렘린과 붉은광장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방송에서 러시아 관련 뉴스를 볼 때면 견고한 크렘린 성벽과 넓은 붉은광장, 양파 모양의 돔이 특징인 성 바실리성당이 배경화면으로 나온다. 그만큼 크렘린과 붉은광장은 러시아의 상징이다. 크렘린 성벽 동쪽에 위치한 붉은광장은 로마시대에선 포룸(Forum)이었다가 이후 수백년 동안 러시아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발전했다. 물건을 사고팔던 장소여서 매매 또는 장사를 의미하는 러시아어 ‘토르크(Topr) 광장’이라고 불렸다.

이곳이 러시아 전역으로 이어지는 길의 중심이 된 것은 15세기부터다. 16세기에는 광장 남쪽의 삼위일체 교회 이름을 따서 ‘삼위일체 광장’으로 바뀌었고 1571년 대화재 발생 후에는 ‘화재광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17세기 후반 국가의 명령으로 국립역사박물관 등 공공건물이 주변에 들어서면서 점차 번화하게 되고 18세기 초부터는 모스크바 문화와 생활의 중심지로 발돋움한다. 1702년 피오트르 대제가 민중을 계몽하기 위해 붉은광장에 연극 공연장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통치의 심장부인 크렘린 옆에 위치한 데다 모스크바 중심의 넓은 공간이었던 까닭에 러시아 황제의 명령을 전달하는 장소나 정치범 등을 공개 처형하는 장소로 악용되기도 했다. 특히 조국의 운명이 걸린 전쟁이 일어나면 병사들이 붉은광장에서 출정식을 갖고 전장으로 향했다. 러시아는 1812년 모스크바를 침공했던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조국전쟁’, 나치 독일과의 전쟁을 ‘대(大)조국전쟁’이라고 부르며 두 전쟁에서의 승리를 민족적 자부심의 근거로 삼고 있다. 현재 붉은광장 북쪽에는 조국전쟁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붉은광장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광장 중앙에서 공개처형을 시행했던 16세기 러시아 황제 ‘폭군 이반’ 때 이름이 지어졌다거나 크렘린의 붉은 성벽과 붉은색 석재로 만든 레닌 묘, 역사박물관의 붉은색 건물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소련 시절 광장에서 행사가 있을 때면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물결을 이루던 모습이 연상되면서 붉은광장으로 명명됐다는 설도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 붉은광장에는 크리스마스트리와 마켓, 스케이트장이 설치돼 있어 시민과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붉은광장 북쪽 끝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국립역사박물관이 우뚝 서 있다.

하지만 붉은광장은 오역에서 비롯됐다. 붉은광장을 러시아어로는 ‘크라스나야 플로시치’라고 하는데 ‘크라스나야’에는 ‘붉은’이라는 의미 외에 ‘아름다운’이란 뜻이 있다. 붉은광장의 원래 이름은 ‘아름다운 광장’이었고 19세기부터 ‘크라스나야 광장’으로 불렸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가 된 이후 체제를 연상시키는 붉은색이 광장의 이미지를 지배하게 되면서 붉은광장(Red Square)이 됐다. 결국 붉은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본질을 잃고 사회주의 체제 선전장으로 전락한 셈이다.

붉은색은 사람을 선동하는 효과가 있다. 소련 시절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지곤 했던 붉은광장에서는 매년 5월 대조국전쟁 승전 기념 군사 퍼레이드나 국가 차원의 큰 행사가 열린다. 붉은광장의 북쪽 끝 ‘부활의 문’을 나서면 마네쥐 광장의 주코프 장군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주코프 장군은 1945년 5월 8일 소련군 최고 사령관 이름으로 베를린에서 나치 독일군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6월 24일 붉은광장에서 개선 행진을 했다.

코로나19가 유럽에 확산되기 전인 지난 2월 8일 찾아간 붉은광장은 주말 나들이를 나온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광장 주변에 포진한 크렘린 성벽, 레닌 묘, 국립역사박물관,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성 바실리성당, 카잔대성당, 부활의 문, 러시아 최고의 굼 백화점 등이 붉은광장의 위상을 말해주고 있다. 붉은광장은 크렘린과 굼 백화점 사이 폭 130m, 역사박물관과 성 바실리성당 사이 695m로 이뤄진 대광장이다.

대부분 국가는 16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제정한 ‘그레고리력’을 따르고 있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을 사용한다. 그레고리력에 따르면 성탄절은 12월 25일이지만 율리우스력에 의하면 13일 후인 1월 7일이 성탄절이다. 그래서인지 붉은광장에서는 2월인데도 크리스마스트리와 함께 마켓이 설치돼 성탄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광장에는 어린이 놀이기구와 스케이트장도 설치돼 있었다.

지난 2월 8일 주말 나들이를 나온 시민과 관광객들이 붉은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붉은광장 남쪽 끝에 있는 성 바실리성당 옆에는 크렘린 관람객들이 출구로 이용하는 스파스카야 망루가 있다. 크렘린 망루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다. 1491년 이탈리아 건축가 피에트로 안토니오 솔라리가 작업한 이 망루는 사면에 지름 6m짜리 커다란 시계가 달려 있다. 17세기 초에 설치한 것인데 당시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스몰렌스크의 구세주 이콘(성화)이 망루에 걸려 있어 ‘구세주 탑’으로도 불린다. 스파스카야 망루 꼭대기에 과거 러시아 황실을 상징하는 쌍두 독수리가 설치돼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별이 있다. 성 바실리성당 아래로는 모스크바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붉은광장은 소련 시절 국가사회주의 권력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그래서 크렘린 성벽 쪽 광장에는 레닌이 밀랍인형처럼 방부 처리돼 안치된 거대한 무덤이 있다. 자기 영토에서 완벽한 통제자로 인지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통치자의 본질적 특성이다. 그래서 광장은 관 주도 행사에서 대대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배경이자 무대가 된다. 철권 통치를 휘두른 스탈린은 붉은광장에서 군사퍼레이드 등을 통해 권력을 과시하고 현존 질서를 신격화했다. 레닌 묘를 붉은광장 한켠에 거대하게 만들도록 지시한 사람도 스탈린이다. 러시아의 영원한 영웅, 레닌의 후계자가 자신임을 온 세상에 알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레닌 묘 뒤에는 현재 러시아 크렘린 내각궁전이 있다. 붉은광장 북쪽 끝 역사박물관과 조국전쟁박물관 사이에 있는 부활의 문은 1534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스탈린이 군사 퍼레이드에 방해가 된다며 철거를 지시해 사라졌다가 스탈린 사후에 재건됐다.

광장은 통치자의 군림과 통치자가 표상하는 질서를 보여주는 기호이기도 하다. 광장은 권력을 발산하고 증명하는 훌륭한 무대가 되고, 각종 의식이 행해지는 동안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는 기회가 된다. 특히 사회주의 광장은 이념을 통한 초국가적 믿음을 형성하고 정부의 중앙 집중화를 공고히 한다. 붉은광장이 슬라브족의 러시아 제국 이미지보다는 이념적 색채의 소련 이미지가 강한 이유다.

하지만 붉은광장은 이제 시민들과 관광객이 즐겨 찾는 도심 속 휴식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광화문광장도 세종문화회관 앞 차도를 보행공간으로 편입해 꽃과 나무가 있는 시민광장을 조성, 이념적 대결장이 아닌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모스크바=글·사진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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