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조용신의 스테이지 도어] 영화 문법으로 다시 태어난 무대 버전, 그리고 OTT

입력 2020-12-26 04:08
채드윅 보즈먼의 유작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가 넷플릭스의 최신작 리스트에 올랐다.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와 그의 백업밴드가 남부의 조지아를 떠나 북부 시카고로 와서 음반을 녹음했던 하루 동안의 일을 다룬 작품이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의 최신작 리스트에 미국 대표 극작가 어거스트 윌슨의 1983년 초연작인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Ma Rainey’s Black Bottom)가 추가됐다. 올해 암으로 세상을 떠나 큰 충격을 안겼던 블랙 팬서 채드윅 보즈먼의 마지막 작품이다. 토니상 두 번과 아카데미상을 받은 ‘범죄의 재구성’ 주인공 애널리스 키팅으로 유명한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블루스의 어머니 마 레이니를 맡았고 연출은 뉴욕의 퍼블릭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오랫동안 일했던 연출가 조지 C. 울프가 맡았다. 제작은 어거스트 윌슨의 연극 ‘펜스’를 감독하고 주연으로 출연도 했던 덴젤 워싱턴이다. 바이올라 데이비스는 어거스트 윌슨의 연극 ‘킹 해들리 2세’로 처음 토니상 여우 조연상을 받은 이후 연극 ‘펜스’와 영화 버전, 이번 작품에서도 주연을 맡으면서 극작가 어거스트 윌슨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는 중이다.

넷플릭스는 그보다 두 주 앞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프롬’을 공개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 메릴 스트립과 뮤지컬 영화 ‘물랭 루즈’ 이후 거의 이십 년 만에 뮤지컬 영화로 돌아온 니콜 키드만의 캐스팅이 큰 화제를 불러 모았고, 브로드웨이의 신성인 앤드류 랜널 등이 출연해 미국 시골에서 졸업 무도회에 참석할 수 없게 된 여학생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스토리를 그렸다. 감독인 라이언 머피의 개인적 트라우마로 무대 뮤지컬과는 엇나간 초점을 보여주며 원작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에서는 거의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과거 ‘토킹 헤즈’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았던 데이빗 번의 브로드웨이 스타일 콘서트인 ‘아메리칸 유토피아도’도 HBO를 통해 공개됐다. 영화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새로운 문법으로 재탄생한 ‘프롬’이나 ‘마 레이니’와 달리 디즈니 채널에서 방영된 뮤지컬 ‘해밀튼’처럼 무대를 촬영한 버전이지만 콘서트라는 특성상 촬영하는 방식은 훨씬 전위적이다.

이 모든 작품의 특징은 음악이다. 어거스트 윌슨의 연극인 ‘마 레이니’ 조차도 그러하다. 19세기 후반에 태어난 실존 인물인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와 그의 백업밴드가 남부의 조지아를 떠나 북부의 시카고로 와서 음반을 녹음했던 하루 동안의 일을 다룬 작품이다. 무대 버전에서는 밴드의 대기실과 녹음실 두 개의 공간에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되며 마 레이니의 대표곡이자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Black Bottom’만 부르지만 영화 속에는 새로 작곡된 곡까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두 시간이 넘는 연극의 러닝타임을 90분의 영화로 줄이면서도 어거스트 윌슨의 가슴 저미는 대사들은 대부분 살아남았고 그 틈을 음악이 채웠다.

무대를 영화로 옮기는 일은 마치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 결과로 들을 수 있는 말 가운데 최악은 “연극을 보는 것 같다”는 평일 것이다. 서로의 문법이 다른데 그만큼 평이하게 옮겼다는 뜻이겠지만 ‘마 레이니’는 연극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이 따른다.

감독인 조지 C. 울프는 원작의 계절인 겨울을 여름으로 바꿨고 놀라울 정도로 클로즈업을 시도해 마 레이니가 풍기는 열기를 그대로 느끼게 했다. 스튜디오 안에서는 백인을 무릎 꿇리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환한 바깥세상에서는 백인들의 멸시를 받는 위치인 마 레이니의 사회적 지위의 대비도 훌륭하다. 무엇보다도 지하감옥과도 같은 밴드 연습실과 그 연습실의 한쪽에 있는 잠겨진 문을 통해 흑인들에게 주어진 백인 사회의 약속의 덧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극단적일 정도의 클로즈업은 극장 개봉작이었다면 시도하기 힘들겠지만 OTT라면 다르다. 관객은 자신의 개인 스마트 기기를 통해 작품을 접한다. 과거 라이브 극장을 찾던 관객들은 카메라가 필요 없이 자신의 눈으로 무대의 어디를 볼지를 결정했다. 작아진 화면 속에서 무대의 생생함을 되새기는 작업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그 작업의 선두에 뮤지컬이 있다.

이수진 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