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내는 삼시 세끼 밥 차리기 귀찮아서 카레를 만들 때 일주일 치를 한 번에 만들어요. 그래서 일주일째 삼시 세끼 카레만 먹고 있네요. 제가 인도 사람도 아니고 맨날 카레만 먹어야 하냐고 투덜대고 싶지만, 소심해서 오늘도 카레에 밥을 비벼 먹어요. 언제까지 먹어야 할까요?” 즐겨 듣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한 남편의 고민 상담 내용이다.
“어떤 날은 후추 좀 쳐서 먹어보고, 다른 날은 고추장도 넣어보고, 김치에 먹어보기도 하고 열무에 먹어보면 어떨까요?”라며 사연을 소개한 남자 진행자가 멋쩍게 위로를 전한다. 위로가 부족했다고 생각했던 탓일까. “그래도 카레가 곰탕보다는 나아요”라고 한술 더 떴다. 곰탕은 한 달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웃자고 한 이야기겠지만 뒤끝이 씁쓸했다.
“아, 힘드시겠어요. 그건 좀 심하네요”라고 위로할 만도 하지만 요즘은 그런 말 하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남성 위주의 역사 속에서 희생을 감당했던 (또한 감당하고 있는) 아내들이 있기에 이런 불만은 애교 섞인 우스갯소리가 됐고, 그것도 사치라면 남편들끼리 몰래 나눠야 하는 소심한 속풀이가 되어버렸다.
남편들의 잘못이 워낙 크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밥상 차려 주는 게 어디야. 차려줘도 난리야. 당신은 손이 없어? 그럼, 당신이 차려 먹던가”라는 반격에 두손 두발 다 들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밥’에 대한 남편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남편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한 상담 전문가에 의하면 의외로 많은 남편이 밥에 목을 매고 밥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한다고 한다. 이혼 이야기가 오갈 때마다 “당신이 결혼해서 나한테 아침밥 몇 번이나 차려줘 봤어?”라는 말이 남편들의 입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을 보면 남편들에게 ‘밥’은 끼니 해결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한 지인으로부터 ‘영혼 없는 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유레카!”를 외쳤다.
밥에도 영혼이 있어야 했다. 배달 음식이 남는 게 두렵다는 분(다음 날 메뉴), 아침으로 빵만 몇 십 년 먹었다는 분, 차라리 배달시켜 먹는 게 더 좋다는 분, 저녁을 안 먹고 퇴근하면 아내가 싫어한다는 분, 아침밥 먹어보는 게 꿈이라는 분, 집밥은 ‘락앤락’(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 뚜껑만 열면 집밥!)이라는 분,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리려는 딸에게 “야! 버리지 마. 아빠가 먹으면 돼”라는 아내의 말을 들었다는 분, 배달 음식이 집밥이라는 분, 즉석 냉동식품 데운 것이 집밥이라는 분….
“그놈의 밥! 밥! 밥! 지겹다 지겨워. 밥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아이 둘 돌보는 것만도 이미 몸이 떨어져 나가는데 웬 밥 타령? 표시도 안 나는 집안일을 온종일 하는 것도 억울한데, 반찬 투정이라니.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냐. 그럼 당신이 집안일과 애 보는 걸 좀 열심히 돕던가.” 아내 앞에서 남편의 ‘영혼 없는 밥’ 타령은 본전도 못 챙길 악수가 될 게 뻔하다. 소심한 속풀이로 맴돌 뿐이다.
‘영혼 없는 밥’에 쌓일 대로 쌓인 남편들의 불만은 해결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배고픔을 때우는 끼니로서의 밥이 아니고, 온종일 가족을 위해 최전방에서 전쟁을 치른 노고에 대한 인정과 존경으로서의 밥을 기대하는 남편. 보이지 않는 후방에서 가족을 위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루하루 고군분투한 것에 대한 이해와 위로를 기대하는 아내. 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던가. 전쟁의 장소를 바꿔보기 전에는 서로의 불만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직접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서로를 향해 두 귀가 먼저 열려야 할 것이다.
김영훈 (연세대 교수·심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