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산타클로스

입력 2020-12-23 04:05

나는 산타의 존재를 믿는다. 실제로 산타에게 편지를 받아본 적도 있었다. 저 멀리 핀란드에 사는 산타로부터 편지를 받아서 크리스마스 당일에 집으로 발송해주는 업체가 있었다. 그 업체에 신청해놓고 크리스마스날만 손꼽아 기다렸었다. 그런데 하필 그해에 배송문제가 생겨서 크리스마스가 하루 지난 뒤에야 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 어린 마음에 한바탕 울고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었다. 타인에게 기대하면 기대한 만큼 마음을 다친다는 깨달음을.

성인이 되어서 나는 산타처럼 선물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 쓸 돈을 아껴서 선물을 산다. 기념일과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늘 선물을 준다. 선물 받은 사람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고마워하는 사람, 부담스러워하는 사람, 더 크게 돌려주는 사람으로 말이다.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고, 더 크게 돌려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상처는 기대에 대한 충족이 안 됐을 때 느껴지고, 고마움은 기대에 대한 충족이 있을 때 주로 느껴지는 감정인데 나는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산타는 늘 곁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늘 곁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많은 것을 퍼주시는 부모님도 산타, 기쁨과 웃음을 주는 반려동물도 산타, 사랑을 주는 애인도 전부 산타라고 생각한다. 주변의 모두가 산타라고 해서 나는 받기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산타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는 인간이기에 실수를 저지르며 산다. 부모님에게 짜증 내는 실수, 반려동물의 병을 늦게 알아차리는 실수, 애인에게 무심하게 되는 실수를 말이다. 인성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사람이라서 종종 실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된다. 물질적인 선물이 아닐지라도, 늘 선물하는 마음으로 베풀며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바로 그 ‘산타’라고 생각한다.

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