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11년 만에 다시 법원에 회사의 운명을 맡기는 처지가 됐다. 회생절차가 개시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이지만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다. 2009년 겪었던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쌍용차는 21일 이사회를 열어 회생절차 신청을 결의하고 서울회생법원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2009년 1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영난으로 기업 회생을 신청한 이후 11년 만이다. 이 사건은 서울회생법원 회생1부에 배당됐다. 재판부는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있을 때까지 회사 재산보전 처분과 포괄적 금지 명령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1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 쌍용차는 금융기관에서 빌린 대출금 1650억원을 갚지 못할 상황이 되자 회생을 신청했다. 쌍용차는 산업은행에서 빌린 대출금 900억원을 만기 연장일인 이날까지 갚지 못했다. 이날 만기가 돌아온 우리은행 대출금 150억원도 원리금 상환에 실패했다. 산은은 이날 쌍용차 대출 연장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을 내리기 전에 쌍용차가 ‘독자적인 경영 판단’으로 먼저 회생절차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앞서 쌍용차는 지난 15일 JP모건, BNP파리파,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등 외국계 금융기관 대출금 600억원에 대한 상환을 연체했다고 공시했다.
쌍용차는 최근 출시된 ‘임영웅 차’ 올 뉴 렉스턴의 선전에도 적자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11월 쌍용차 판매량은 9만682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8% 감소했다. 쌍용차의 자본 잠식률은 3분기 연결 기준 86.9%다. 지난해 말(46.2%)과 비교해도 크게 악화됐다. 쌍용차는 올해 1분기 분기보고서, 반기보고서와 3분기 분기보고서까지 세 차례 연속 회계법인의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4분기에도 감사의견이 거절되면 상장 폐지된다.
쌍용차는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모든 임원이 사표를 제출키로 했다. 기업이 회생절차를 신청하면 법원은 회생 개시나 청산 두 가지 중 하나를 결정한다. 기업 운영을 계속했을 경우의 가치가 청산했을 때보다 높으면 회생을 개시한다. 쌍용차의 경우 연관된 전후방 산업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법원이 청산을 택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문제는 쌍용차가 다시 정상화할 수 있을지 여부다. 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는 그동안 쌍용차 매각을 위해 여러 곳과 협상을 벌여 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재 쌍용차가 매력적인 매물은 아니기 때문에 매각이 성사되지 않았다. 현재 미국계 자동차 유통 업체인 HAAH오토모티브가 관심을 보여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진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힌드라는 지난달 10일 실적 발표에서 “쌍용차에 더는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마힌드라는 새 투자자를 찾으면 현재 75%인 지분율을 50% 미만으로 낮춰 대주주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쌍용차는 이날 ‘회생절차 개시 여부 보류 신청서’(ARS 프로그램)도 동시에 냈다. ARS 프로그램이란 법원이 채권자들의 의사를 확인한 뒤 회생절차 개시를 최대 3개월까지 연기해 주는 제도다.
쌍용차는 이 기간 채권자, 대주주 등을 설득해 원만한 합의를 끌어내 회생절차를 빠르게 매듭짓겠다는 목표다. 또 현재 진행 중인 투자자(HAAH오토모티브)와의 협상도 마무리해 조기에 법원에 회생절차 취하를 신청할 계획이다. 마힌드라 측도 “ARS 기간 대주주로서 책임감을 갖고 이해관계자와의 협상 조기 타결을 통해 쌍용차의 경영 정상화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차가 당장의 채무 상환 위기에서 벗어나면 회생 신청을 취하할 예정이어서 2009년처럼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하지만 인력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새로운 투자자와의 협의 과정에서 인력 구조조정이 조건으로 명시될 수 있는 데다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 인건비 절감에 나설 경우 정리해고를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쌍용차는 기업 회생을 신청한 2009년 구조조정을 통해 1700여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당시 노조는 70여일간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강력 반발했고, 노조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까지 투입되기도 했다.
쌍용차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쌍용차 문제로 협력사와 영업 네트워크, 금융기관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 매우 송구스럽다”며 “더 탄탄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쌍용차의 회생절차 신청에 따른 부품 협력사들의 연쇄 충격을 막기 위해 지원반을 가동한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