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휫필드와 존 웨슬리는 17세기 영국에 살았던 동시대 인물이다. 그들은 옥스퍼드대학 내에서 조직된 소그룹에서 하나님의 일에 헌신했다.
두 사람 모두 야외설교에 탁월했고 사역을 통해 수천 명의 회심자를 얻었다. 웨슬리는 교회사에 큰 획을 긋는 교회와 주일학교를 많이 세웠다. 하지만 휫필드는 사역을 마감할 때 웨슬리만큼 확실한 열매를 맺지는 못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웨슬리는 제자훈련을 통해 소그룹 리더를 배출하는 데 헌신했지만 휫필드는 설교와 심방에 너무 바빴다.
새로운 교회공동체를 세우고 이끄는 것은 정말 흥분이 된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교회공동체를 다음 지도자에게 넘겨주고 떠날 때 교회공동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이다.
수십 년 후 우리가 이끌던 교회공동체는 과연 성장하고 번성할 것인가, 아니면 단지 현상유지만 할 것인가. 혹시 흩어지고 마는 것은 아닌가.
교회공동체를 이끄는 데는 세부적인 준비와 실행이 필요하다. 설교 예배 심방 전도 상담 제자훈련 기도 교제를 비롯해 교회행정과 기타 사역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런데 이 바쁘고 긴급한 수많은 사역 중 소그룹 번성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될까. 성공적인 교회 지도자는 현재의 긴급한 일을 넘어 새롭게 태어날 소그룹의 중요성을 내다본다. 새로운 예비 소그룹 지도자를 훈련하는 데 우선적으로 시간을 투자한다. 결과적으로 평범한 소그룹 구성원이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가진 소그룹 지도자들로 변모한다.
따라서 목회 지도력의 성공 여부가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하다. 얼마나 많은 소그룹 예비 지도자를 선발해 훈련하고 실전에 배치하느냐에 달려있다.
미래의 지도자를 육성하는 것은 성경적 방법이다. 예수님께서는 12명의 평범한 사람을 불러 훈련시켰다. 바나바는 바울을 훈련했고 바울은 디모데를 훈련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과연 미래의 소그룹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훈련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평범한 인물을 택해 제자훈련해서 탁월한 소그룹 지도자로 세우셨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탁월한 번성방법이다.
우리도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과 주님이 보여주신 방법을 모델 삼아 제자를 키워야 한다. 교회공동체 안에 있는 성도들을 단지 교회 안에서 은혜받고 봉사하는 그런 수준에 머물게 하면 안 된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래의 소그룹 지도자로 쓰임 받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 트랙을 준비해야 한다. 첫 번째 트랙은 담임목사가 직접 교회의 주역으로 동역할 수 있는 차기 소그룹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다. 흔히 교회마다 시행하는 제자훈련이다. 교회 안에서 시행하는 제자훈련은 반드시 담임목사가 이끌어야 한다. 이는 지적 전수가 아니다. 제자를 키우는 것이다. 부교역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왜냐면 담임목사와 평생 함께 사역할 수 있는 동역자를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교회가 한마음으로 결속된다. 그래야 교회가 큰 잡음 없이 든든히 세워질 수 있다.
청빙된 부교역자는 언제라도 다른 목회지로 떠날 수 있다. 이왕이면 담임목사가 직접 제자훈련을 하면서 같은 마음, 같은 비전으로 하나 된 제자 중에서 열매를 많이 맺는 성도를 부교역자로 세우는 게 좋다. 정 안되면 청빙된 부교역자를 담임목사가 직접 제자훈련 시켜서 같은 마음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 트랙은 교회공동체 내 모든 성도가 그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그룹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 핵심 방법이 바로 셀 그룹 제자양육이다.
오늘날 많은 성도가 은혜를 받는 데 익숙해져 있다. 설교 제자훈련 세미나 특강 부흥회로 은혜를 받는다. 문제는 은혜받은 대로 삶 속에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치 생명이 살지 못하는 사해 같은 성도들이 된다.
갈릴리 바다는 물고기가 넘치는 곳이다. 베드로가 그물을 던졌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다. 왜 갈릴리는 이처럼 생명이 넘치는가. 넘치는 생수를 요단강을 통해 끊임없이 사해로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해는 흘려보내 주는 생수를 받기만 할 뿐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명이 다 죽어간다.
예수마을셀교회 성도들이 셀 제자양육하면서 공통으로 고백하는 것이 있다. 셀 제자양육하면서 본인이 먼저 성령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그 기쁨 때문에 다시 일어나 한 영혼을 찾아가 양육을 한다.
단지 복음을 전하는 것만으론 소그룹 지도자로 세워지지 않는다. 주님이 명하신 제자 삼는 일에 헌신함으로써 증명돼야 한다. 그중 열매 맺는 성도를 소그룹 지도자로 세울 때 교회는 건강한 교회로 세워진다.
[코로나19시대 셀 제자양육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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