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성탄절을 지낼 때 유대인들은 ‘하누카(Hanukkah)’란 명절을 지킵니다. 봉헌이란 뜻의 하누카는 성경에는 ‘수전절’로 기록되는데, 수전이란 성전을 고친다는 뜻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함을 말합니다. 수전절의 배경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 약 1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사악한 왕 안티오쿠스 4세가 유대인들을 헬라화하고자 토라를 불태우고 예루살렘 성전 벽에 돼지 피를 바르는 등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더럽힙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마카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저항했고, 극적으로 3년 만에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했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명절이 수전절입니다. 힘없는 소수민족으로서 기득권에 저항해 성전을 회복한 것도 기적이었지만, 하루치밖에 남지 않은 거룩한 성전 기름이 놀랍게도 8일 동안 빛을 발했다고 합니다. 언약 공동체가 정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체험한 것이죠. 그래서 수전절에는 상징적으로 가운데 불은 항상 켜놓고 양옆으로 있는 8개의 촛대에 매일 하나씩 불을 밝힙니다. 유대인들에게 수전절이란 성전 회복만이 아니라 빛의 축제로도 기억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22절)
요한은 성전 회복을 기념하는 수전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밝히 보여주신다고 기록합니다.(24, 30절) 그 대답을 들은 유대인들은 그런 말을 하는 예수라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33절)
오늘 본문은 “자칭 하나님이라” 말하는 예수를 만난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들은 예수가 한 말을 똑바로 이해했기에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신성 모독죄’를 언급할 정도로 종교에 열심을 쏟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이 유대인들을 어리석다고 탓하기 전에 한번 우리 믿음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코로나19로 말미암아 밝히 보인 한국 교회의 민낯을 생각할 때 과연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를 똑바로 이해하고 있는지 고민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너무 쉽게 자신을 크리스천이라 말하지 말고 과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어찌 인간으로 오셨는가 깊이 생각해본 후 크리스천으로서 합당한 행동은 무엇인가 생각하며 변화해야 합니다. 만일 진심으로 수전절 사건과 첫 크리스마스에 관한 성경의 기록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예수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두 가지만 가능합니다. 본문에 소개된 종교인들처럼 예수를 죽이고자 돌을 들든지 아니면 예수를 경배하고자 예수 앞에 무릎을 꿇든지입니다.
예수가 그냥 위대한 스승 정도라면 우리는 그분을 열심히 따르는 정도로도 괜찮습니다. 단순히 기독교란 종교의 창시자 정도라면 다른 교인보다 희생을 더 하는 정도로 만족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가 정말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면 우리가 드리는 그 무엇이 합당한 것일까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크리스천에게 ‘대충’이나 ‘나중’은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창조주 하나님이 하늘을 가르시고 인간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이것이 성탄절입니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며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음성을 제대로 들었다면 “오 하나님이시여”라고 고백하며 십자가를 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승한 목사(산울교회)
◇산울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산본에서 시작해 온 세상에 나누기를 소망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이는 복음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