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라는 말이 심하게 오용되고 있다. 권력이나 권좌의 획득을 위한 행위만을 뜻하는 것으로 오용된다. 정치란 매우 복합적·포괄적·다의적 개념인데도 정작 정치인들이 정치의 한 부분, 그것도 부정적 뉘앙스가 강한 부분만 강조해 그게 정치의 다인 양 말하고 있다. 일부 야당 정치인마저 “아무리 정치가 권력 획득, 정권 창출을 목표로 한다 해도 집권세력이 너무 한다”라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권력을 쥔 여당 정치인들은 더욱이 “정치가 권력의 획득과 창출을 본질로 한다는 점은 예전 정권들로부터 내려온 이치”라고 외친다. 권력 핵심부 인사들이 이와 똑같이 말하지 않는다 해도 근래 그들의 각종 행태는 이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현 여권은 과거 야당 시절이나 정치입문 이전에는 온갖 진보적·이상적 미사여구로 정치의 고매함을 역설하고 그 부재를 개탄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일단 권력을 쥐자 그렇게 욕하던 권력 지상주의 관점에 빠져 스스로 정치의 의미를 협소화시키고 있다. 그 이중성이 놀랍다. 그들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국정감사 때 질문을 받고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그 방법은 퇴임 후 생각해 보겠다고 원론적으로 답변하자 “자기 정치를 한다” “정치 중립을 위반했다” 등의 비판을 가했다. 그들은 윤 총장이 징계 처분에 대해 집행정지 신청 및 취소 소송을 제기하자 이번에도 정치적 행위를 한다고 매도한다. 경계 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정치 활동이라고 억설(臆說) 하는 이면에 정치를 권력·권좌 관련 행위로만 보는 협애함이 깔려 있음이 드러난다.
고교만 잘 다녀도 정치를 이렇게 좁게 이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교 ‘정치와 법’ 교과서에 나와 있듯이, 좁은 의미의 정치는 권력의 획득·유지·행사와 관련된 활동이지만, 넓은 의미의 정치는 사회 구성원 간 이해관계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해결해 질서 유지, 사회 통합, 사회 발전을 기하는 과정을 뜻한다. 전자는 수단, 후자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목표를 유념하며 수단을 생각해야지 오로지 수단만 고려하면 되겠는가. 정치를 수단으로만 좁혀 인식하면 권력을 둘러싼 책략만 중시되고 정작 사회를 위한 정치의 고귀한 목표는 도외시될 수밖에 없다.
만약 사회에 큰 균열이나 중대한 분쟁이 없고 기본적 규범의 공감대가 존재한다면 정치를 권력 활동으로만 좁게 봐도 무방할지 모른다. 권력을 향한 경쟁이 체제에 생기를 불어넣고 발전의 원동력이 되면서도 큰 대립과 갈등을 초래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슘페터는 개방적 분위기에서의 자유 경쟁을 통한 정권 획득·유지를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으로 내세웠고, 그의 이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민주주의 확산에 중대한 공헌을 한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미국 등 당시 사회가 안정되고 국민 사이에 강한 공감대가 작동한 자유 진영의 선진국들에서 순기능을 낸 반면, 그런 조건을 결여한 국가들에서는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세계 곳곳에서 권력을 위한 권력 다툼만 격화시켜 체제가 아예 깨지거나 권위주의로 회귀된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은 호시절이 아니다. 사회적 공감대가 조성돼 안정, 통합, 발전에 대한 큰 고민 없이 권력 활동만을 정치로 생각해도 되는 상황이 아니다. 양극적 사회균열이 심해지고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들이 국민을 혼란과 불안에 빠뜨리며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악조건에서 정치는 넓은 의미, 즉 각종 문제를 조정·해결해 체제의 질서, 통합, 개혁을 기하는 과정과 제반 활동으로 이해돼야 한다. 권력과 관련된 행위는 그 수단의 일부일 뿐이다.
정치권, 특히 현재 권력을 쥐고 국정 책임을 진 인사들은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국민 모두를 바라보며 넓은 의미의 정치, 목표로서의 정치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권력만 좇는 수단으로서의 좁은 정치를 하고 있는지. 국민을 두 편으로 갈라 한쪽은 구악으로 몰고 다른 한쪽은 흥분·자극시켜 동원하는 이분법적 극단주의 책략으로 권력 추구에만 매몰돼 있지 않은지. 내가 권력을 가져야 목적으로서의 정치도 잘 될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건 아닌지. 정치를 권력과 책략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세월에 따라 반대 진영 간 치졸한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짓밟힐 것이다. 이제라도 정치를 수단보단 목표의 차원에서 인식하는 핵심 권력층의 대오각성이 요청된다.
임성호(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