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가 최근 LG그룹 계열 분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최근 3년간 LG 지분 약 1%를 사들인 이 펀드는 LG그룹의 계열 분리가 소액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재고를 요구했다. 헤지펀드가 우리나라 기업을 상대로 공격에 나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3%룰’을 포함해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 통과된 직후에 해외 자본이 우리 기업을 본격적으로 공격했다는 점에서 재계에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이전과 다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침소봉대’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낸다. 지금까지 해외 헤지펀드가 여러 차례 공격을 시도했지만, 한 차례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이번이라고 결론이 다르겠냐는 것이다.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가 가진 지분이 1%밖에 안 되기 때문에 영향력이 미미할 것이라는 논리다.
헤지펀드의 속성을 잘 모르는 안이한 생각이다. 헤지펀드는 지분을 매입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서기도 하지만 주주의 권리를 앞세워 높은 배당을 요구하며 기업의 ‘곳간’을 노리기도 한다. 2003년 SK와 경영권 쟁탈전을 벌였던 소버린은 경영권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9000억원가량의 차익을 남기고 떠났다. 헤지펀드가 주주의 이익을 앞세우는 요구를 하면 기업으로선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엘리엇이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공격했을 때 두 회사는 모두 주주친화정책을 내놓으며 공격을 무마시켰다. 성공하면 경영에 간섭할 수 있고, 실패해도 높은 배당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헤지펀드로선 기업을 공격해 손해 볼 일이 별로 없는 셈이다.
여기에 3%룰로 이전보다 쉽게 기업에 고배당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이를 마다할 헤지펀드가 있을까 싶다. 개정된 상법에 맞춰 전략을 짜고 우리 기업을 공격하는 헤지펀드는 늘어날 것이고, 당장은 아니어도 몇 년 안에 3%룰의 허점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 헤지펀드가 기업 경영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 헤지펀드 목표는 수익 극대화다. 기업을 인수하면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영을 해 비싼 값에 경영권을 다시 되파는 게 이들의 속성이다. 장기 투자, 고용 등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이런 우려를 ‘앓는 소리’ 정도로 치부하는 건 기업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3%룰이 만들어진 취지는 기업 경영에 대해 제대로 감시할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분명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커 보이면 재고해야 하는 게 맞는 수순이 아닐까.
기업들은 여당이 추진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경제단체들이 모여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등 문제점 알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전망은 부정적이다. 공정경제 3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도 할 말은 충분히 했지만, 받아들여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 들어 만남의 자리는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지만, 의견이 반영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과정도 이와 같을 것이라는 우려다.
재계 일각에서는 과거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위상의 경제단체가 없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에 재계 입장을 전달할 강력한 ‘메신저’가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원인 분석이 나오지만 뚜렷한 해법은 모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무조건 반대만 말고 처음부터 수용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80석 가까운 의석을 가지고 있는 여당은 재계의 요구와 상관없이 법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크다. 내년도 기업들엔 힘든 한 해가 될 것 같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