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채소 장수 할머니

입력 2020-12-21 04:03

사나흘이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전철역 입구에서 반찬거리를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 봄이면 쑥이며 냉이, 민들레, 돌미나리 같은 모둠을 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계절에 따라 파는 물품이 바뀌는데 어떤 때는 상추나 호박잎 같은 것을 팔기도 했다. 여름이면 고구마줄기와 도라지 껍질을 벗기느라 종일 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한 자리에서 일을 하시던 할머니. 옆에서 같이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그 할머니 손자가 병원에 있다가 이제 퇴원해서 내일쯤 나올 거라나.

장애가 있는 손자를 데리고 구청의 지원을 받으며 어렵게 사는데 할머니를 기다리던 아이가 골목에 나왔다가 개에게 물렸다고 했다. 보통 아이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겠지만 강아지가 무서워 쫓다가 도리어 개에게 물렸을 거라고 했다. 빈 집에서 종일 할머니 오시기를 기다렸을 아이. 다친 손자를 치료하기 위해 할머니는 얼마나 애를 태우셨을까. 어려운 일은 더 힘들 때 찾아오기도 한다. 손자와 함께 어렵게 사는 할머니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다니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를 기르는 사람들도 좀 더 신경을 써 주었으면 싶다. 산책을 시킨다며 개를 끌고 공원을 찾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목줄을 맸다고는 하지만 때때로 찔끔거리는 강아지의 오줌은 막을 도리가 없다. 개로서는 영역 표시라는 동물적 본능이겠지만 잔디밭이나 길가를 구분하지 않고 아무 데나 흘리고 다닌다. 특히 어린이들이 잔디밭에서 뒹굴기라도 할까 염려스럽다. 요즈음에는 남들의 눈을 피해 발길이 뜸한 곳을 다니다가 강아지가 배변을 하면 그대로 못 본 척 자리를 피하는 얌체족도 더러 있다. 아침에 주민들이 나와 골목의 개똥을 치울 때도 있다. 이제는 강아지 때문에 이웃이 불편한 일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 손자가 빨리 건강을 되찾아서 할머니의 싱싱한 채소를 얻을 수 있었으면.

오병훈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