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전셋값 폭등과 디플레수준의 0%대 저물가 원인을 놓고 잇따라 정부를 저격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나섰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7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물가안정목표 2% 달성 가능 여부를 묻는 질문에 “물가가 수요압력이 낮은 측면도 있지만 국제유가나 정부의 복지정책 강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통화정책만으로 물가를 목표수준으로 끌고 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 물가는 지난해 0.4%에 이어 올해에도 0%대 중반(1~11월 0.5%)의 낮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한은은 ‘관리물가의 최근 동향 및 소비자물가에 대한 영향’이라는 참고자료를 통해 정부의 복지정책이 반영된 관리물가를 저물가의 주요 압박요인으로 꼽았다. 관리물가는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품목의 물가지수를 지칭하는데, 2018년 0.3%(전년동기 대비) 떨어진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올 하반기 하락 폭이 2.7%로 크게 확대됐다. 이에 따라 관리물가의 소비자 물가 기여도는 2017년 0.08% 포인트에서 올해 11월까지 -0.35% 포인트로 늘어났다. 관리물가가 갈수록 소비자물가를 끌어내리는 힘이 세지고 있는 것이다.
한은은 그 이유로 코로나19로 인한 가계 생계비 경감을 위해 고교무상교육확대,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이동통신요금 지원 등 정부의 복지정책 강화를 들고 관리물가가 상당한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관리물가가 소비자 물가에 차지하는 비중이 21.7%로 일본(18.6%), 유럽연합(12.6%)에 비해 높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우리나라의 ‘디지털화’ 수준이 다른 주요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사실도 직·간접 경로를 통해 추세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또 이날 기준금리 인하로 전셋값이 올랐다는 정부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6월 이후부터 전셋값 상승폭이 확대됐는데 저금리 기조는 훨씬 이전부터 유지돼 왔다면서 최근의 전셋값 폭등은 수급부진 우려가 확산된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한은은 앞서 지난 15일 전세값 하락 원인과 관련, 정부와 여당의 기준금리인하 책임론을 반박하는 내용의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로 임차가구들이 월세보다 부담이 적은 전세를 찾게 되면서 전세가격이 상승하고 있다”고 한은에 화살을 돌렸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