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영국 소녀 엘라 키시-데브라(사진)의 사인이 대기오염이라는 영국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기오염이 공식 사인으로 인정된 것은 세계적으로 처음이다. 일간 가디언은 16일(현지시간) 2주간에 걸친 공판 끝에 필립 발로우 검시관이 “엘라는 대기 내 포함된 과도한 미세먼지와 이산화질소(NO2)가 유발한 중증 호흡곤란과 천식으로 사망했다”며 “엘라의 사망진단서에 이 같은 내용이 사인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엘라의 죽음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조 대회에서 메달을 딸 정도로 건강했던 엘라는 6살이던 2010년 천식 발작을 시작한 뒤 심각한 호흡기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엘라는 발작 증세로 인해 30차례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다. 폐 기능이 마비된 적도 5번에 달한다. 발로우 검시관은 “소녀는 폐에 액체가 가득 차는 상황에서도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고 말했다.
엘라는 3년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인 2014년 사인을 규명하기 위한 심리에서는 급성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대기오염의 영향은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엘라의 어머니인 로사문트 키시-데브라는 딸의 죽음이 심각한 대기오염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스티븐 홀게이트 사우샘프턴대 면역학 교수의 전화를 받고 6년간의 외로움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홀게이트 교수는 엘라가 사망했을 당시 그녀가 거주했던 루이스햄 지역의 대기오염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치솟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후 수년간의 연구 끝에 그는 겨울철의 건조한 환경이 ‘계절적 대기오염’을 유발했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엘라가 거주한 루이스햄 지역에서는 자동차 매연 등으로 인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유럽연합(EU)과 영국의 법적 제한치인 연 40㎍/㎥는 물론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 기준마저 초과하는 대기오염 수치가 기록됐다. 특히 엘라가 살던 집은 도로에서 25m가량 떨어져 있어 대기오염의 영향을 훨씬 크게 받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홀게이트 교수는 “엘라는 탄광 안에 놓인 참새처럼 죽어갔다”면서 “보건 당국은 흡연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을 심각하게 다루듯 대기오염 문제에 책임감 있게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홀게이트 교수는 2018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았고 영국 고등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엘라의 사인을 규명한 최초 심리 결과를 파기했다. 그리고 지난 2주간의 공판을 거쳐 대기오염이 엘라의 직접적인 사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CNN은 “대기오염이 사인으로 기록된 것은 전 세계에서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대기오염은 심각한 공중보건 위기”라며 “오늘 판결은 역사에 기록될 한순간”이라고 환영했다. 가디언은 비슷한 사례의 피해자들이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전망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