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올해의 소셜 임팩트

입력 2020-12-18 04:03

하루에 받는 보도자료 메일의 개수를 어림잡아보자면 적은 날은 100건 안팎, 많은 날은 300건 이상에 이른다. 적잖은 자료가 오전 보고시간 전에 빠르게 읽히고 금세 기억에서 밀려난다. 어쩌면 내가 공들여 취재하고 고민하면서 쓴 많은 기사가 그러하듯이.

속독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반드시 열어보는 메일들이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CSR) 자료다. 비록 비중 있는 기사로 다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내가 취재하는 기업의 ‘소셜 임팩트’를 확인해나가는 중요한 작업이다. 어느 기업이 어떤 가치를 갖고,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려 노력했는지 살피는 과정이다.

소셜 임팩트는 기업의 사회공헌을 확장한 개념이다. 소셜 임팩트를 강화하는 기업들은 플라스틱 제로, 탄소 저감, 장애 인식개선, 아동보호, 동물복지, 멸종위기 동물보호 등 보다 구체적이고 선명한 가치에 적극 투자한다. 대개는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나 방향성에 부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소셜 임팩트 활동의 연속성을 보장한다.

미국 국적의 의류기업 ‘파타고니아’는 소셜 임팩트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덜 사고 더 요구하라’는 것을 기업 가치로 내걸고 진지하게 접근한다. 옷을 튼튼하게 만들어 소비자가 덜 자주 사도록 하고, 폐자원을 활용해 제품을 만든다. 파타고니아는 소비자들에게 ‘의류산업이 기후위기를 앞당기는 오염원의 10%를 배출하고 있다’거나 ‘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직군’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썩 괜찮은 제품을 만들고, 인상 깊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많은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는 것 등등이 ‘가치 있는 기업’에 대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여기에 더해 사회공헌에 관한 이야기도 나름의 지분을 갖고 있다. 소비자도 주주도 근로자도 ‘돈과 시간과 노동력을 기꺼이 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올해 우리나라 유통가에서 펼쳐진 인상적인 사회공헌 활동 중 하나는 편의점 업계가 함께하고 있는 ‘아동안전지킴이’ 캠페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편의점은 학대를 피해 도망친 아이들이 찾아가는 곳으로 종종 등장한다. ‘아동안전지킴이’ 캠페인은 편의점 근무자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관찰하고 혹시 모를 학대의 징후를 살피게 한다. 범죄의 감시자로서 동참하게 한다. 선천성 대사이상 환아용 분유나 희소병 환자용 햇반을 생산하기 위해 비용을 들여가며 공장을 가동하는 매일유업이나 CJ제일제당의 사회공헌 활동도 눈여겨볼 만하다.

환경친화적인 노력은 부쩍 늘었다. 현대백화점의 ‘친환경 VIP 제도’는 꽤나 신선했다. 구매금액과 상관없이 친환경 활동 5가지를 인증하면 무료 주차, 할인 혜택 등을 받을 수 있는 VIP 등급을 부여했다. 동원그룹, 오리온, 풀무원, CJ제일제당, 롯데칠성음료 등 여러 식품기업의 친환경 포장재 도입도 칭찬받을 만하다. 이마트와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세제 리필 스테이션’은 소비자 호평을 받으며 친환경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거리를 던져줬다. 위기의 시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데 소셜 임팩트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된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