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20년 옥살이’ 윤성여씨 무죄… 특진 경찰 5명 운명은?

입력 2020-12-18 00:07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재심 청구인 윤성여 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법원 청사를 나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32년 만이다. 무고한 윤씨를 범인으로 몰았던 경찰과 검찰, 재판에서 이를 바로잡지 못한 채 잘못된 판결을 내린 법원은 윤씨에게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경찰은 당시 윤씨를 검거하고, 그 공으로 특진까지 했던 경찰관들의 승진 취소 및 급여 환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이미 퇴직한 해당 경찰관들의 인사카드에도 이번 재심 결과를 기록해 다른 경찰들이 반면교사로 삼도록 할 계획이다.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박정제)는 17일 열린 윤씨 재심사건 재판에서 “과거 수사기관의 부실수사 및 제출 증거의 오류를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며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과거 유죄판결의 근거가 됐던 윤씨의 자백을 불법체포·감금 상태에서 가혹행위로 얻어진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 사건의 진범 이춘재의 자백은 구체적·합리적이며, 객관적인 증거와 부합해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옥고를 거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은 피고인에게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 선고가 피고인의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윤씨 재심 재판을 도운 박준영 변호사 등 방청객들은 손뼉을 치며 환영했다. 사건을 다시 수사하고 재심 재판에 참여한 수원지검 형사6부 이상혁, 송민주 검사는 검찰을 대표해 윤씨에게 다시 사과했다.

경찰은 선고 직후 “윤씨를 비롯해 피해자, 가족 등 관련된 모든 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이어 “무고한 청년에게 살인범이라는 낙인을 찍어 20년간 옥살이를 겪게 해 큰 상처를 드린 점을 깊이 반성한다”며 “억울한 피해자가 다시는 없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경찰청은 당시 윤씨 검거로 특진한 경찰관 5명의 승진을 취소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특진을 취소하면서 그 이후 이어진 다른 승진을 어디까지 취소할지 그 범위 등을 검토하는 중”이라며 “조만간 열릴 중앙특진심사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취소 범위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소되는 승진 범위에 따라 급여환수 등 절차도 뒤따를 전망이다. 이들은 모두 퇴직한 상태지만 경찰청이 관리하는 인사기록에도 재심 결과를 남길 계획이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다. 윤씨는 경찰의 가혹 행위에 따른 허위자백으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3심에서 무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춘재는 지난달 2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8차 사건을 포함한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범죄가 자신의 범행임을 시인했다.

정현수 기자, 수원=강희청 기자 jukebox@kmib.co.kr